매년 10월 초만 되면 국내 과학기술계는 ‘이번에도 역시나…’ 라며 탄식을 내뱉는다. 아직 단 한 명도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해서다. 반면 일본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5명으로 23명(일본계 미국인 포함)에 달해 “대단하다. 자랑스럽다”고 환호한다. 장경수 한국연구재단 실장은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은 어릴 때 과학기술을 자연스레 접하고 흥미를 가졌다”며 “지방 국립대도 신진연구자가 능력을 발휘할 환경을 갖췄다. 유학 등으로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귀국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산학연 공동연구를 많이 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도교수의 뒤를 이어 연구실을 물려받는 풍토가 있어 연구에서 자기 브랜드가 확고해진다. 7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는 학생들에게 “공부만 하지 말고 더 엉뚱하고 더 재미있는 괴짜가 되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일본은 독창적 연구와 탄탄한 산학연 융합연구를 바탕으로 소재·부품·장비 등 기초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초과학 연구가 논문과 특허 숫자에 매몰돼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학연 융합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기초→응용→개발연구’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은 “우리는 정부 연구개발(R&D)에서 기초연구 비중도 30%대에 그치고 연구자도 따라하기 연구나 양적성장에 몰두한 연구로 창의성 있고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인재 양성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2018학년도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이 동시에 미달됐고 KAIST 등 4개 특성화대도 처음으로 수학·물리 등 4개 기초과학 전공에서 지원자가 감소했다. 취업난 심화에다 병역특례 축소 움직임 등이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우수 인재의 의대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올 들어 기업에서 저녁 일찍 불 꺼진 연구실이 늘어난 데 이어 이달부터는 25개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 연구실 분위기도 ‘워라밸’로 바뀐 지 오래다. 낮에 연구에 집중하고 직군별 유연근무제를 하면 된다지만 연구에 지장이 많다.
과학계의 한 원로는 “정부가 노벨상을 타기 위해 창의사업이나 기초과학연구원(IBS) 등에 집중 지원하며 돈을 몰아줬지만 성과나 모럴해저드 논란이 적지 않다”며 “교육혁신과 산학연 융합연구 내실화가 시급하고 연구자에게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지원하는 한편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