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백범의 길上·下]백범 상하이 탈출 뒤엔...美 조력자 있었다

■도진순 外 10인 지음, 아르테 펴냄

윤봉길 의거 후 일제에 쫓기다

美 선교사 피치 도움받아 피난

상하이 탈출 경로 최초 조명 등

임시정부 발자취 생생하게 담아

백범 김구 선생.백범 김구 선생.








1932년 4월2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장이던 백범 김구는 중국 상하이의 한 찻집에서 윤봉길과 마주앉았다. 윤봉길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하이에 왔다”며 “도쿄 의거를 일으킨 이봉창 선생처럼 이곳에 마땅히 죽을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러자 김구는 4월29일 홍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 행사에서 의거를 단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윤봉길은 “이제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준비해 달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신간 ‘백범의 길’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비며 독립 투쟁을 벌인 김구(사진·1876~1949)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백범 70주기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백범김구기념사업회가 기획한 책으로 상·하권으로 나뉘어 출간됐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등 한국과 중국의 학자 11명이 함께 썼다.

책은 임시정부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을 이야기체로 서술한 뒤 그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현재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소개한다. 김구와 윤봉길이 상하이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진 찻집의 이름은 ‘스하이 차관’이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역사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답사 기행문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사진 자료와 정보들이 충실하다.

1932년 4월20일 윤봉길과 김구가 거사를 도모했던 찻집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1932년 4월20일 윤봉길과 김구가 거사를 도모했던 찻집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윤봉길은 홍커우공원 의거 현장에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2월19일 일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윤봉길 의거의 주모자로 지목된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한 미국인 선교사인 조지 애시모어 피치 박사의 집으로 피신해 10일 이상 머무른 뒤 상하이를 탈출해 임시정부를 항저우로 옮겼다. 백범이 피치 박사의 자택을 나와 상하이를 벗어난 상세한 탈출 경로는 도 교수가 이번 책을 통해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이라고 한다.

윤봉길 의사가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 행사에서 폭탄을 던진 상하이의 루쉰공원(당시 이름은 홍커우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 ‘매헌’.윤봉길 의사가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 행사에서 폭탄을 던진 상하이의 루쉰공원(당시 이름은 홍커우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 ‘매헌’.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 아래 항저우·전장·창사·광둥·류저우·치장·충칭 등으로 임시정부 청사를 수차례 옮긴 끝에 마침내 조국 광복을 이루고 백범이 귀국길에 오르는 대목은 독자의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일본의 투항 이후 귀국 준비를 착실히 진행한 백범은 1945년 11월5일 충칭의 주룽포 비행장에 마련된 단상에 서서 “본인은 귀국 후 연합국 헌장의 정신을 좇아 독립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사업에 매진할 것”이라며 “한중 양국 민족이 정성과 친목으로 억만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천명했다. 이후 충칭에서 상하이로 날아간 그는 18일 후인 11월23일 김포공항을 통해 환국했다.


도 교수는 “우리 민족의 반일 투쟁만이 아니라 중국인과 서양인 등 인간의 자유와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세계인들이 존재한 덕분에 조국의 독립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을 기획한 백범김구기념사업회의 김형오 회장은 발간사에서 “백범과 독립운동가들은 27년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며 5,000㎞가 넘는 고난과 시련의 길을 이어갔다”며 “그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해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고 변했으며 또 사라졌는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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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임시정부 청사의 외부 전경.충칭임시정부 청사의 외부 전경.


이들의 설명처럼 책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 절망 속에서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던 굳센 기개, 꿈에 그리던 해방의 환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다만 11명의 저자가 각자 쓴 장(章)을 병렬식으로 묶어놓은 탓에 책 뒷면에 수록된 연보를 일일이 들추지 않으면 일목요연하게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귀국 이후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통일 정부 수립에 마지막 남은 생애를 바친 백범의 생애를 되짚고 싶다면 백범김구기념사업회가 지난해 펴낸 ‘백범의 길-조국의 산하를 걷다’를 참조하면 된다. 상·하권 각 2만5,000원. 사진제공=아르테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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