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인센티브 3종 세트에 10조+α 규모의 기업 투자 프로젝트. 15년 이상 모든 노후차 개별소비세 70% 인하하고 고효율 전자제품 구매금액은 10% 환급.
정부가 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내용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투자 활성화와 내수 촉진에 방점이 찍혔죠.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내린 2.4~2.5%로 하향 조정할 만큼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급하게 쏟아낸 정책들입니다.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남습니다.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찔끔 부양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거든요.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또 내릴 만큼 대내외 경제여건은 나빠지고 있는데 대책은 ‘평시용’인 탓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주재한 경제활력 대책회의에서 “점차 확대되는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며 경기 활력 제고에 역점을 뒀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데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말 일몰 예정인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제도를 오는 2021년까지 연장하기로 했죠. 기업이 공정 개선 설비나 반도체 제조 첨단설비 등 특정 설비에 투자하면 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법인세 등에서 공제해주는 제도입니다. 대기업 공제율을 현 1%에서 2%로 2배 높이고 중견(3%→5%)과 중소(7%→10%)기업 공제율도 상향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대기업에 세 혜택을 주는 것은 현 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음을 반증하는 거죠. 정부는 조만간 의원 입법 형태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통과 후 1년간 한시적으로 상향된 공제율을 적용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1년간 깎아주는 세금은 5,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죠.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하는 안전시설에 대한 세액공제도 2년 연장합니다. 방기선 기재부 차관보는 “공제율 확대는 1년 한시로 도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던 투자 프로젝트가 올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죠.
투자 비용을 초기에 크게 털어내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가속상각제도를 6개월간 확대 운영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대기업은 연구개발(R&D) 시설뿐 아니라 생산성향상시설 등에 투자했을 경우에도 50%까지 가속상각이 가능하죠.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사업용 자산에 대한 상각을 75%까지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속상각제도 확대와 일몰 연장에 따라 내년 1,000억원, 2021년 3,900억원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죠.
10조원+α 규모 투자 프로젝트도 추진합니다. 8조원 가량의 투자는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기 착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죠. 2조7,000억원이 투입되는 충남 서산 대산산업단지 내 중질유 원료 석유화학단지(HPC)는 예정대로 올 하반기 착공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경기 화성시 송산면 일대에 호텔과 쇼핑몰·골프장 등이 들어서는 복합 테마파크는 2021년 인허가를 완료해 그해 착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죠.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부지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연구기관과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R&D 캠퍼스가 2022년 착공되도록 지원합니다.
그 외에 서울 잠실운동장 일대와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추진되고 있는 마이스(MICE) 시설 건립 사업과 GTX(광역급행철도망) B노선(송도~서울역~마석) 사업도 속도를 냅니다. 낙후 지방 도시와 산단 재생 산업 등에 투자할 수 있는 5조원 규모의 지역개발투자 플랫폼도 신설할 예정이죠.
정부가 이처럼 경기 부양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합니다. 세제혜택 등 재정으로 할 수 있는 손쉬운 대책만 나열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민감한 사안들은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죠.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면서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가져가면 대형 프로젝트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내수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대거 포함했습니다. 노후차 개소세 인하가 대표적이죠. 지난 2004년 ‘뉴 EF 쏘나타’를 구매해 올해 하반기 ‘K7’으로 교체할 계획인 A씨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2019 K7 가솔린 차량의 출고가격은 2,820만원. 만약 A씨가 지난 상반기에 차를 바꿨다면 개별소비세와 교육세·부가가치세 등을 합쳐 142만원의 세금을 내야 했죠. 그나마 개소세 탄력세율 인하(30%) 제도로 5%에서 3.5%로 낮아진 개소세율이 적용된 금액입니다. 신차 구매 시기를 하반기로 늦춘 덕에 A씨의 세금 부담액(43만원)은 99만원가량 감소합니다. 정부가 15년 이상 된 노후차를 신차(경유차 제외)로 교체할 때 개소세 70%를 추가 인하해주겠다고 밝히면서죠.
이처럼 정부가 모든 노후차를 대상으로 개소세를 깎아주는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개소세 탄력세율 인하 기간을 올해 말까지 2차례 연장하고 노후 경유차를 신차로 교체할 때 추가 개소세 혜택을 줬음에도 내수 시장이 살아나지 않자 10년 만에 다시 대책을 내놓은 셈이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과 마찬가지로 노후차 개소세 인하 제도 역시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돼야 하는데다 인하 금액과 대상도 한정적인 탓이죠. 15년 이상 노후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351만대입니다. 기재부는 이번 조치로 약 1만6,000대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죠.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올해 말 종료되는 개소세 탄력세율 인하 혜택까지 포함할 경우 개소세율은 1.05%까지 낮아지지만 법 통과 시기에 따라 중복 혜택 기간이 짧을 수 있다”며 “혜택 기간이 법 개정 이후 6개월로 짧고 한도 역시 100만원에 그쳐 정책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고효율 가전기기 구매 금액의 일부를 환급해주겠다는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하면 가구당 20만원 한도로 구매금액의 10%를 돌려받는 식이죠. 대상 품목은 텔레비전과 냉장고·에어컨 등입니다. 단 1등급 제품이 없는 에어컨은 ‘최고 등급(2등급) 제품’을 환급 대상으로 결정할 예정이죠. 환급 기간은 오는 8월부터 재원이 소진될 때까지입니다. 구체적인 지원사항은 관계부처 논의 후 발표할 계획이죠.
아쉬움은 남습니다. 지원 대상이 적고 재원도 제한적인 탓이죠. 혜택을 받는 대상은 한전의 복지할인 대상(3자녀 이상, 대가족, 기초수급자 등) 335만가구로 한정됐습니다. 재원은 한국전력공사의 손익 예산 과목 중 고효율 기기 설치 지원비로 마련할 계획이지만 121억원에 불과하죠. 20만원 한도로 단순 계산하면 지원 대상 335만가구 중 6만500가구(2.0%)만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기재부는 필요할 경우 전력산업기반기금의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재원을 추가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내국인의 시내 및 출국장 면세점 구매 한도는 3,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높입니다. 입국장 면세점 구매 한도(600달러)를 포함하면 총 구매 한도는 5,600달러죠.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류 콘텐츠를 브랜드화한 ‘케이컬쳐 페스티벌’의 정례화도 추진합니다. 다음 달 31일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정책은 추가 연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