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불에 그을린 반쪽 초상화…'문예군주 효명'을 말하다

■국립고궁박물관 '효명' 특별展

정조 못잖은 정치력 갖췄지만

대리청정 3년만에 돌연 별세

창작한 공연·시 등 자취 전시

효명세자의 18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화재로 반쪽만 남아 전한다. /사진제공=문화재청효명세자의 18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화재로 반쪽만 남아 전한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정조가 38세에 얻은 아들인 순조는 형 문효세자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11세의 어린 나이로 왕좌에 올랐다. 어머니도 아닌 할머니뻘 영조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국정을 이끌던 순조가 1809년에 장남을 얻었으니 그가 바로 효명세자(1809~1830)다. 효심 지극하고 총명한 효명이 정조시대의 르네상스를 다시금 불러올 것만 같았다.

체계적인 왕위 계승 교육을 받은 그는 19세이던 1827년부터는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정사를 돌보는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일파의 정치적 세력 투쟁이 극심하던 때였으나 효명은 문예를 숭상하며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실천했다. 하지만 대리청정 3년 만에 하늘이 그를 불러갔다. 훗날 효명세자는 아들 헌종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추존왕으로 비로소 ‘익종’이라는 왕의 이름을 얻었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이 맡은 이영이 바로 효명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기획한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특별전은 잊힌 효명세자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한다. 불에 타 반쪽만 겨우 남은 효명세자의 초상화(睿眞·왕세자 초상화를 뜻하는 예진)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안타깝게 떠난 인물의 삶 자체를 드러낸다. 이 예진은 효명세자가 18세이던 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정조 못지않은 문학적 재능을 가져 ‘문예군주’라는 수식어를 얻은 효명세자는 20년 남짓 짧은 생애에 400여 제(題)의 시를 남겼다. 자주 들르던 궁궐의 누각이나 정자, 그곳에서 본 풍경과 계절의 변화가 주로 시의 소재가 됐다. 효명세자의 문집인 ‘학석집’과 편지글들이 전시장에 나왔다. 효명은 창덕궁 후원 애련지 옆에 책도 읽고 쉴 수 있는 자신의 공간으로 의두합(倚斗閤)을 지었는데 전시공간 자체가 의두합처럼 조성됐다. 관객은 효명의 서재를 둘러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효명세자는 의두합의 경치를 10가지 절경으로 분류한 시 ‘십경(十景)’을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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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는 민가의 주택양식을 궁궐 안에 지어 사대부의 생활을 알게 한 ‘연경당’을 짓고 경복궁 내 왕의 침전인 ‘자경전’을 증축했다. 그가 대리청정한 기간에 제작된 국보 제249호로 지정된 ‘동궐도’를 보면 당시 새롭게 고치고 지은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 동쪽의 창경궁과 창덕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내려다보듯 그린 ‘동궐도’는 3,000그루의 나무와 전각들로 빽빽하지만 이후 전란과 화재 등을 거쳤기에 지금의 모습과는 꽤 다르다. 보물 제1534호인 ‘서궐도안’은 경복궁 서쪽의 경희궁을 그린 곳인데 여기서도 효명세자의 생애와 관련된 공간을 볼 수 있다.

건물을 짓고 늘리는 것은 권위와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펼쳐진 궁중연향(잔치)도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정치적 통합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829년에는 순조 즉위 30년을 기념하며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는데, 효명세자는 연주·춤·노래 등 궁중정재(呈才)의 창작을 주도하고 직접 노랫말(樂章·악장)도 지었다.

밤 잔치인 ‘야진찬(夜進饌)’을 처음 행했고, 23종의 정재를 손보며 독무(獨舞)를 처음 선보이는 등 조선 후기 궁중예술의 혁신도 이끌었다. 그간 국내에 선보인 적 없는 여성 공연자 여령(女伶)의 옷과 왕실 잔치에 술잔으로 사용된 ‘옥잔’과 ‘마노잔’ 등이 최초로 전시됐다. 이들 복식과 잔들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이다. 오는 14일 오후 3시에는 국립국악원과의 협업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로비에서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를 공연한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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