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7월5일 영국 에든버러 로슬리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포유동물 복제 양인 돌리가 탄생한다. 다 자란 6년생 양의 체세포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핵이 제거된 다른 암양의 난자와 결합한 뒤 대리모 자궁에 이식했다. 2000년 6월26일에는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원이 인간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인간게놈지도의 밑그림을 완성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공적인 요소를 살아 있는 세포에 삽입·결합해 인공세포를 개발하는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다만 스스로 대사활동을 하는 에너지 전환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세포가 에너지를 흡수하고 물질을 전환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 이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많은 애로가 따랐던 것이다.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연구팀은 세포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인공 세포막에 삽입해도 기능이 유지된다는 사실에 착안, 세포에서 막단백질을 추출하고 인공세포막에 삽입하면 순차적으로 생체 단백질 중합반응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팀은 식물의 광합성 단백질과 박테리아의 광전환 단백질을 추출해 스스로 에너지 대사를 할 수 있는 인공 미토콘드리아를 제작했다. 이를 인공세포막에 삽입해 골격단백질을 합성하며 움직이는 인공세포를 제작했다.
인공세포는 빛을 사용해 생체에너지(ATP)를 생산하고 세포의 움직임과 형태를 구성하는 세포골격을 합성했다. 원시적 형태의 세포와 유사하게 빛에 반응해 움직이는 현상이 관찰됐다. 신 교수는 “살아 있는 세포와 형태·기능이 동일할 뿐 아니라 광합성 작용을 통해 에너지 대사활동을 하는 인공세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팀은 실험을 통해 인공세포가 최대 30일간 에너지를 만들고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증명했다. 연구 성과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표지논문으로 지난해 5월 실렸다. 이 연구에는 정광환 서강대 교수, 안태규 성균관대 교수,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 외에도 이길용 하바드대 포닥 등 제자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신 교수는 “생명체와 유사한 인공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기초적인 연구에 불과하다. 고등세포가 수행하는 수많은 대사활동 중 극히 일부”라면서도 “생명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이해해 생명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앞으로 신약 실험과 질병치료 연구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합성생물학에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게 결합된다면 사람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기대다. 그는 “세포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꿈이었지만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수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영국 임피리얼대와 킹스칼리지의 경우 ‘FABRICELL’이라는 연구센터를 만들어 살아 있는 세포와 인공세포막을 결합해 연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연구진은 인공으로 만든 세포를 암치료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 교수는 “지난해 인공세포 개발에 성공한 뒤 에너지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신체 유전자도 조합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키고 여러 살아 있는 세포와 인공세포를 결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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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은 좋은 논문보다 완전히 새로운 연구주제 찾는 것”
신관우 교수 인터뷰
화학·생물학 등 공학 틀 넘어야
새 아이디어 나오고 성과 나타나
“제 꿈은 좋은 논문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연구주제를 주도적으로 찾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가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7월 수상자인 신관우(49·사진)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융합연구를 하다 보면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밝혔다. 스스로 에너지 대사활동을 하는 인공세포를 구현한 그는 서강대 화학과를 나와 KAIST에서 신소재공학으로 석사를 했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그는 “자연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고 모든 게 서로 연관돼 있다. 생물학을 해도 그 속에 물리학이 있다. 물리학은 전자공학과, 화학은 재료공학과 연관돼 있다”며 인공세포 개발을 위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강조했다. 최근 연구가 기존 화학과 생물학·자연과학과 공학의 틀을 넘어야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공세포 연구도 생명과학·에너지과학·생명공학의 우수 인력들이 협업한 결과라는 것.
그가 몸담은 서강대 바이오계면연구소도 다양한 융복합 연구를 진행한다. 자연대와 공과대 교수들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면의 구조와 특성을 연구하고 응용기술을 개발한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공동연구를 위해 학생들과 해외 유수 대학에 다녀오곤 한다”며 “우리 대학원생들이 하나의 인공세포 반응 관찰에 필요한 전문 현미경이 없어 다른 기관의 장비를 빌려 쓰는 환경과 대비돼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신 교수는 “인공세포 연구를 시작하기 전인 2008년 중고생들에게 강연할 때 ‘사람이 만드는 세포의 꿈’을 주제로 했는데 그로부터 10년 만인 지난해 논문을 마무리했다”며 “중간에 세포가 빛에 반응해 움직임을 보이는 영상을 촬영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후속연구의 성과가 나오려면 다시 10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적정기술학회 회장인 그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에 현지에 꼭 필요한 과학기술을 개발해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발전에 기여하며 인재를 양성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