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의 초동조치 미흡과 신원 노출 등으로 살해당하는 등 2차 피해를 입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11일 경찰청에 가정폭력 사건의 재발 방지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정책 개선을 권고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초 한국여성의 전화가 접수한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들 가운데 2명이 협의이혼 중인 남편과 전 남편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전 각각 1차례와 3차례에 걸쳐 112에 신고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조사위는 2차 피해의 원인으로 현장 경찰관들의 초동조치 미흡을 꼽았다. 경찰관은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48시간 동안 분리하는 긴급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가해자들에게 종료시점과 위반 시 조치 등에 대해 명확하게 안내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제도적 한계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현행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피해자보호 조치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경찰 신청과 검사 청구, 법원 결정, 경찰 집행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길게는 열흘 이상이 소요된다. 이러한 공백 기간 중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2에 신고된 가정폭력 사건 24만8,660건 가운데 입건된 사건은 4만1,720건(16.7%)에 불과하다. 입건되지 않은 나머지 가정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적절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면서 2차 피해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진상조사위는 유사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가정폭력 사건의 업무가 경찰의 핵심 직무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경찰청에 실질적인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이를 위해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초기 대응체계를 재정비하고, 출동 경찰관의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 및 사건처리 업무역량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112신고센터”라며 “따라서 출동 경찰관들의 초기 대응은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게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 폭력행위를 중단하게 하거나, 반대로 ‘별일 아니라’는 인식을 남겨 가정폭력을 지속 또는 반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