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한지 파고드는 햇살...느린 삶...한옥이 나를 바꿔 놓았어요"

[이사람]마크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프린스턴·와튼스쿨 나온 월街 엘리트

삼성전자 스카우트 되면서 韓과 인연

뉴욕과 다를 바 없었던 강남 살다가

별생각 없이 찾은 한옥에 빠져 북촌行

고가구·고미술품 선택에도 일가견

마루에만 앉아 있어도 저절로 힐링

삼청동에서 경복궁 거쳐 광화문까지

30분 남짓한 출근 시간 마저도 소중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한옥

정작 한국인들은 가치 몰라 아쉬워

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



서울 종로구 가회동, 일명 ‘북촌 한옥마을’이다. 오밀조밀한 한옥을 옆에 끼고 골목을 따라 오르고 또 올라 닿은 호젓한 집 앞이다. 초인종을 누르니 다정한 발자국 소리가 다가온다. 대문을 열어준 이는 JTBC의 ‘비정상회담’ 등에 출연해 방송인으로도 친숙한 마크 테토(39) TCK인베스트먼트 전무다. 한옥에 사는 외국인,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문화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진 그를 만났다.

“이쪽으로 오세요. 대문에서 현관까지가 집 안에 난 작은 골목 같죠? 걸어 들어가면서 마음을 씻는다는 뜻에서 ‘세심(洗心)길’이라 부르고 있어요. ‘세심교’라는 다리 이름에서 따왔죠.”


테토 전무는 미국 코네티컷주 태생으로 프린스턴대와 와튼스쿨을 졸업한 ‘엘리트’다. 뉴욕 월가에서 일하며 모건스탠리 등에 근무한 그가 꼬박 14시간을 비행해야 닿을 한국에 와서 이토록 유창한 우리말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글로벌 인수합병(M&A) 전문가였던 그는 지난 2010년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되면서 한국으로 왔다. “짧은 여행으로 몇 번 와 본 나라”였을 뿐이지만 이탈리아계 부모의 영향으로 “한국과 이탈리아가 열정적이고 정 많고 관계를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어” 왠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5년은 회사와 가까운 서울 강남에 살았고 생활은 뉴욕과 별다를 게 없었다. 북촌의 이 집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영문책자 ‘한옥(Hanok)’의 저자 박나니씨가 소개해 이 집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2004년에 리노베이션을 한 후 거의 빈집 신세이던 이곳으로 2015년에 이사했다. “별생각 없이 들어섰는데 나무 향이 그윽했고 대나무 소리가 좋았습니다. 지대가 높아 주방 겸 다이닝룸에서 창을 열면 동네 다른 한옥들의 기와지붕이 눈 아래로 펼쳐집니다. 창틀과 창살은 마치 액자 같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에서 ‘차경(借景)’이라고 하죠. 사실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는데 이 집의 영향으로 어울리는 고가구와 고미술에 관심이 생겼어요.”

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 /성형주기자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 /성형주기자


테토 전무는 집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고 했다. 옆집 지붕을 보다 기와의 곡선미에 심취했고 수막새와 암막새를 구분해가며 기와 수집에 빠져들었다.

“집 이름이 평행재(平行齋)입니다. 조선 시대 누군가가 살았을 이 땅, 이 집에 멀리서 온 내가 평행한 삶을 살고 여러 인생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옛 한옥에 어떤 가구가 있었을까 공부하고 이해하며 ‘한옥살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세심하게 골라 하나씩 들였다. 전통 고가구도 구했지만 직접 디자인도 했다. 팔각 문살에서 착안해 팔각테이블을 주문 제작했고 그에 맞는 카펫 문양도 창살의 느낌으로 직접 디자인했다. 서재를 겸한 안방에 놓인 좌탁은 다른 한옥에서 나온 대들보를 재료 삼아 앉는 높이에 맞췄다.

“이것은 조선 말기의 반닫이장입니다. 위에 놓인 빗살무늬의 토기는 5~6세기 가야 시대의 것이라는데 저희 집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입니다. 그 옆에 둔 인장함은 도장을 보관하던 것이죠.”

가구 위로 걸어둔 권영우(1926~2013)의 작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집 주인의 감각을 대변한다. 권영우는 한지를 겹친 다음 칼집을 내고 안료가 스미게 한 작업으로 유명한 단색화의 대표 작가다. 작품 속 반복적인 칼집 선은 토기의 빗살무늬와, 농도를 달리한 사각의 형태는 인장함과 대구를 이룬다. 사무용 책상 위에는 매화나무가 솟구치는 매병과 수막새가 놓였고 뒤쪽으로는 거문고를 세워놓았다. 이렇게 배열하니 심플한 컴퓨터마저도 전통 유물들과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가 그의 한옥집 안방에 앉아 있다.기업인이자 방송인 마크 테토가 그의 한옥집 안방에 앉아 있다.


기업인이자 방송인인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가 자신의 안방 반닫이장 위에 놓인 인장함과 빗살무늬 토기, 화가 권영우의 작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기업인이자 방송인인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가 자신의 안방 반닫이장 위에 놓인 인장함과 빗살무늬 토기, 화가 권영우의 작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어쩌면 푸른 눈의 그가 달리 봤기에 찾아낸 우리 문화의 매력이다. 고미술을 생활 공예품으로 활용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작은 뒷마당에 놓여 화초를 잔뜩 안은 청동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의 이름을 아세요? ‘드무’라고 불러요. 재미있는 단어라 생각했어요. 물 받는 수조 같은 것인데 궁궐에서는 불이 나면 물을 부을 수 있게 뒀다더라고요. 경매를 통해 구입한 19세기 드무인데 이 안에 나무를 심어뒀더니 보기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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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조선 말기에 지금의 북한지역인 해주지역에서 많이 제작된 해주항아리가 푸근함을 더한다.

“뉴욕 살 때는 32층, 서울에서도 강남의 14층 아파트에 살았어요. 현대인은 땅과 많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 열고 한 걸음만 나가면 땅이다, 싶은 안도감이 좋아요. 소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심리적 위안이 크니 땅의 면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최대한 집 밖에 있으려 했고 혼자인 시간이 우울하기도 했는데 이 집에서는 혼자 가만히 마루에 앉아 있어도 힐링되는 기분이에요.”

한옥생활로 얻은 또 하나의 장점은 ‘슬로다운(slow down)’의 생활방식이다. “덜 바쁜 것은 아니지만 바쁜 와중에도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정리된 마음으로 살게 된다”고 강조한다.

“뉴욕에서는 아침에 밥도 못 먹고 서류와 가방을 쓸듯이 싸들고 뛰쳐나가는 삶이었는데 이 집은 문 하나하나를 돌려가며 잠그고 나가야 해요.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인데 사실 그거 다 합쳐봐야 5분이면 충분합니다. 근데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 집이 내게 ‘시간을 내게’ 만들어요. 정신 차리고 차분해지면서 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게 돼요.”

한국의 전통미가 자신을 바꾸게 했다는 테토 전무는 집에서 광화문 회사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삼청동과 경복궁을 거쳐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30분 남짓한 시간마저도 소중하다.

“외국인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흔하고 익숙한 것도 참신하게 보이죠. 한국이 더 특별한 느낌인 것은 긴 역사 속에서, 전쟁을 겪은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옥들과 고미술품들은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문화재라 더욱 소중하거든요. 어떤 외국인이든 한옥마을에 오면 정말 멋진 문화라고 생각할 겁니다. 주변 한국 사람 중에는 한옥마을을 그저 ‘옛날 집’일 뿐이라 여기고 해외여행에서 본 것들에 감탄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 생각에 한옥은 미국·유럽 어디에서든 자랑할 만한 대단하고 소중한 문화예요. 단지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은 게 좀 아쉬워요.”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성형주기자


테토 전무는 한옥에 살면서 한지를 파고든 햇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미감을 깨우쳤고 그득한 여백의 미를 알았다. 예전에는 ‘다음 꿈’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그저 ‘모어 오브 디스(more of this)’를 지향하며 더 큰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 집을 나서는 현관문 맞은 편에는 조선 후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가 걸려 있다. 청록색 관복을 갖춰 입은 문관의 정면 초상인데 필법이 정교하고 보존상태도 좋다.

“초상화는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우연히 본 그림의 ‘좋은 눈빛’에 빠져들었어요. ‘한국판 모나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끌리듯 샀습니다. 멋있기도 하지만 누구였을까 알아가고 연구하는 중입니다. 분명 중요한 사람이었겠다 싶어 그 정체를 수수께끼 풀듯 밝혀가는 저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의 룸메이트이자 우리 집을 지켜주는 경비아저씨죠.”

집안 곳곳에 밴 그의 애정뿐 아니라 유물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배울 만하다.
/글=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80년 미국 코네티컷주 △2002년 프린스턴대 화학과 △2007년 와튼스쿨대학원 MBA 석사 △2007~2010년 뉴욕 모건스탠리 △2010~2014년 삼성전자 차장 △2014~2015 빙글 CFO △2015~ TCK인베스트먼트 전무 △2016년 서울노인영화제 홍보대사 △2018년 외국인 최초 경복궁 명예 수문장 위촉 △2018년 서울 중구 정동야행 홍보대사 △2019년 간송미술관 ‘대한콜랙숀’ 해설사 재능기부 △2019년 부산시립미술관 홍보대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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