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를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14일(현지시간) “지금 이 위치(총리직)에 있지만 여전히 제 심장은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대형 공장을 지역구에 두고 있는 정치인 출신 고위 관료에게 해당 기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은 가운데 ‘정치인’ 경력을 강조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총리는 이날 수도 다카에 위치한 영원무역 의류공장을 방문했다. 현장에서는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과 사이푸자만 초두리 방글라데시 국토부 장관이 이 총리를 영접했다. 초두리 장관은 영원무역의 또 다른 대규모 공장이 위치한 항구 도시 치타공에 지역구를 둔 3선 의원 출신이다. 이 총리는 초두리 장관에게 영원무역이 치타공에 조성한 한국수출공업단지(KEPZ)에 대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노스페이스 등 다수 브랜드를 운영하는 영원무역은 1980년 방글라데시에 첫 진출, 방글라데시를 섬유 수출 세계 2위 국가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현재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에서 누적 투자 규모가 가장 큰 외국계 기업으로, 현지 고용 인력 규모만 6만4,000여명에 달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을 고용한 첫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원무역은 KEPZ의 토지소유권 이전과 관련, 정부 인허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총리는 “초두리 장관의 지역구에 성 회장이 어마어마한 공장 갖추고 있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고 있다”며 “이는 초두리 장관 지역구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초두리 장관은 “저도 장관이 되기 전에 기업인이었고 지금 공직에 있지만 심장은 여전히 기업인”이라며 “한국의 KEPZ 투자를 고무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 발언에 다시 한번 “지금은 공직에 계시지만 자신의 심장은 여전히 기업인이라고 하셔서 그 문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생산적 대화가 되기를 원한다”며 “저도 지금 이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제 심장은 정치인”이라고 웃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7말 8초’ 개각 가능성과 맞물려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인 이 총리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9월 정기 국회 이후까지 총리직을 계속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 총리의 정치권 복귀가 임박했다는 평가 역시 만만찮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영원무역 다카 공장을 시찰한 후 한국-방글라데시 비즈니스포럼과 기업인 오찬에도 참석했다.
이 총리는 다카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비즈니스포럼에서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앞으로도 방글라데시의 발전과 도약에 동반자로서 함께 하기를 바란다”며 그간 동반 성장시킨 섬유·의류 산업 뿐 아니라 에너지·기반 시설 분야에 경험과 기술을 갖춘 한국 기업이 진출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또 이 총리는 “올해 4월 양국의 관련 기관이 민관합작투자사업(PPP)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앞으로 많은 프로젝트가 발굴되고 협력이 구체화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협력’을 언급하며 “ICT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과 유수 기업을 보유한 한국이 (방글라데시의 핵심 과제인) ‘디지털 방글라데시’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 직후 마련 된 한국 기업인과 오찬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기업인들 만큼 고뇌가 많고 밤잠을 설치고 피를 말리는 직업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더군다나 외국과 교역, 경제 협력을 하는 기업인은 더 많은 고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총리는 “취임 후 2년 2개월 사이 11번째 밖에 나왔습니다만 그때마다 없는 힘이라도 내서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늘 갖고 있다”며 이번 순방도 그리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방글라데시를 거쳐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타르를 연이어 방문한 후 오는 22일 아침 귀국한다.
/다카=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