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총리의 순방 외교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투톱 외교’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투톱 외교, 즉 대통령과 총리가 정상급 외교 수요를 분담하는 방식을 강조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한일관계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지일파’ 총리의 외교적 역할을 부각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심중에 ‘총리 대일특사 카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곧바로 나왔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을 공식 방문 중인 이 총리는 16일(현지시간) “그에 관해서 저와 (청와대가) 논의한 적은 없다”며 “(한일 문제 관련) 매 단계마다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들을 협의하는 과정에 저도 함께했다는 정도의 말씀은 드릴 수 있겠다”고 세간의 관측을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도 정상급 외교를 할 수 있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총리의 순방 외교를 ‘투톱 외교’라는 적극적인 관점으로 봐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제가 총리 해외 순방에 대통령 전용기를 제공하는 것도 단순한 편의 제공의 차원을 넘어 총리 외교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곧바로 이 총리 대일특사설에 불을 댕겼다. 외교가에서는 그간 도쿄 특파원, 한일의원연맹 활동 등을 통해 탄탄하게 쌓은 이 총리의 일본 네트워크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총리는 이날 두샨베의 대통령궁 복합단지에서 열린 수행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그 문제(대일특사 파견)는 저와 협의된 바가 없다”며 “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서 뭔가 한다는 것은 저와 상의된 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리는 ‘그렇다면 총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특사로 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종의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투톱 외교’ 발언에 대해 “처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총리는 “이번 순방의 의미도 기본은 외교 다변화”라며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외의존도가 매우 큰 나라인데 그에 비해 대통령이나 총리의 외교가 그 대외의존도만큼 높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네트워크를 활용하거나 접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신뢰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해 여운을 남겼다.
이 총리는 “한국과 일본은 오랜 기간 동안 상호의존적 체제로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과 인류의 행복증진에 함께 기여해온 관계”라며 “동시에 동북아의 안보에 함께 협력해온 귀중한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소중한 자산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고 결코 손상돼서도 안 된다”며 “일본의 지도자들께서 그런 가치를 재확인하시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가 지난달 중순 제시한 ‘1+1(한국기업+일본기업) 기금안’은 최종안이 아니다”라며 “일본 측도 시기에 따라 몇 가지를 변용해 제안했고 그런 제안들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의해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서로 협의를 하다 보면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외교적 협의는 진행되고 있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샨베=정영현기자 양지윤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