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완성차 브랜드가 2강1약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하이브리드를 앞세운 한국토요타와 혼다코리아의 실적이 개선되는 가운데 가솔린차 위주의 라인업을 갖춘 한국닛산이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다. 특히 적자가 누적된 한국닛산은 본사에 갚을 빚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한일 간 정치·외교적 갈등으로 일본산 불매운동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닛산은 이달 신형 알티마 등 신차를 앞세워 재기에 힘을 쏟고 있다.
1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닛산은 본사인 일본닛산과 단기차입금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한국닛산의 단기차입금은 449억원이며 이는 모두 일본닛산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한국닛산은 내년 3월까지 이 돈을 갚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닛산이 판매부진에 빠지며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으며 이 기간에 누적된 영업손실액은 445억원에 달한다. 2016년과 2017년의 경우 영업외수익으로 각각 421억원과 11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덕분에 본사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아나갈 수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당기순이익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돈 갚을 여력이 없어졌다.
한국법인이 보유한 자금도 부채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04년 법인 설립 이후 2005년부터 국내 영업을 시작한 한국닛산은 누적적자로 결손금이 440억원에 달하며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기준으로 17억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올해 감사보고서에 한국닛산은 이례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닛산은 “차입금 문제는 본사와 연간 사업계획을 통해 해결되게 돼 있다”며 “지난해 신차가 없어 판매가 줄었지만 올해는 새 모델들로 판매를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닛산은 이달 대표 중형세단 알티마 신형을 내놓은데다 전기차 리프,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X50을 출시해 국내 시장에서 반등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모델로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극적’으로 떨쳐낼 수 있을지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모델은 대부분 하이브리드차다. 한국토요타도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있는 캠리가 주력이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9,464대가 팔린 캠리 중 59%, 혼다는 45%(2,040대)가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그런데 알티마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다. 엑스트레일 등 SUV는 아직 국내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의 주력 판매 모델이 아니다. 판매확장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한국닛산의 판매 개선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닛산이 부진에 빠지면서 ‘일본 3대 완성차 메이커’의 명성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2강(토요타·혼다) 1약(닛산)’ 구도로 바뀌고 있다. 닛산은 2015년 5,737대를 팔아 혼다(4,511대)를 앞섰지만 2016년 역전된 뒤 판매량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토요타는 매출 1조1,976억원, 영업이익 68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혼다도 매출 4,664억원에 영업이익은 286% 뛴 196억원을 기록해 2년 만에 배당에 나섰다. 특히 2009년 이후 이익 대부분을 본사로 보내던 한국토요타는 지난해 순이익 약 510억원을 모두 국내에 남겼다. 한국토요타가 이 돈으로 서비스센터 확충 등에 나서면 코너에 몰린 닛산이 벼랑 끝까지 밀릴 수도 있다. 한국토요타의 한 관계자는 “남긴 이익은 한국에서 더 좋은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