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도 밉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항상 예의바른데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10년 이상 MBC와 OBS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퇴직 후에 상담심리학을 전공해 커뮤니케이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강미정 저자는 최근 발간한 책 <말하기의 디테일>에서 말의 디테일이 호감과 비호감을 나누는 척도라고 언급했다.
강미정 저자는 아나운서로 활동 당시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배려의 말’을 익혀왔다고 한다. 적이 없는 대화법을 몸소 실천해온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번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웃어주느라 정작 자기의 말은 꺼내지도 못하거나, 제대로 된 거절도 하지 못하다 보니 주위에 특별히 적도 없었지만 허물없는 친구도 얻지 못했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센스 있게 하는 노하우’를 고민하고 훈련해왔다. 그 결과 부드럽게 표현하면서도 명확하게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내 감정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소통법을 발견하게 됐다.
나의 자존감을 지키며 지혜롭게 표현하는 말하기의 디테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강미정 저자와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저자와의 일문일답.
1. 사소한 말 한마디로 호감과 비호감이 나뉘는데, 그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균형을 맞추는 센스’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상대를 배려하는 말의 균형을 맞추는 센스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버리면 호감을 사기 어렵다. 너무 거칠고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도 비호감이지만, 너무 눈치 보면서 항상 “아무거나 좋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매력없다. 내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그 사소한 차이가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2. 참다 참다 욱해서 말실수를 자주 하게 되는 사람들을 위한 말하기의 디테일이 있을까?
우선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게 계속 참다보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결국 욱해서 말실수를 하게 된다. 감정이 격해질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신의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서 말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서 “넌 왜 항상 제멋대로야!”라고 말하는 대신에 “같이 결정한 걸 상의 없이 자꾸 바꾸면(사실), 나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감정).”라고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상대도 ‘네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이 말을 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당신은 항상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잖아! 나는 안중에도 없지?”라고 비난하는 말을 하기보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살펴보고 “나는 저녁에 당신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일 때문에 우리 약속을 취소하는 날이 많아지니까 사실 속상하고 외로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솔직한 감정과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도 수월해진다.
3. 평소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표현을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방법이 있다면?
1일 1표현 연습을 추천하고 싶다. 꼭 싫은 소리나 자기주장부터 하려고 할 필요 없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부터 표현해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될 수 있다. 늘 아침밥을 차려주는 엄마에게, “와, 엄마 오늘 밥 진짜 맛있다!”라고 말해보거나 직장에서 점심 먹을 때 ‘아무거나 좋아요.’ 대신 “비도 오는데 뜨끈한 짬뽕은 어떠세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다.
‘하루에 딱 하나씩만 표현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재미있는 미션처럼 실행해보면 자기표현의 근육이 다져지게 돼있다. 그렇게 표현을 통한 즐거움을 알고 나면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용기도 조금씩 생기기 마련이다.
4.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거절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나 역시도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거절이었다. 거절 못해서 주변 사람들의 부탁이나 일을 떠맡고 후회한 적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훈련했던 것도 바로 거절하는 법이었는데, 밉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봤다.
첫째는 겸손의 거절이다.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자신을 좀 낮추는 방법이다.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이건 아직 제가 서툴러서 섣불리 했다가 실수할까봐 아무래도 어렵겠어요.”라고 거절의 이유가 자신의 부족함 때문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거절하면 핑계로 들릴 수 있다. 거절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둘째는 조건부 거절이다. 누구든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럴 땐 “오늘은 어려운데, 혹시 주말에는 어때?”라고 내가 먼저 다른 제안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도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고 지금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그렇다고 이해하게 된다.
또 부당한 부탁이 반복될 경우에는 “이번까지는 제가 해드리지만, 다음부터는 담당부서에 의뢰하셔야 일처리가 더 빠를 거예요.”라고 미리 부드럽게 선을 그어놓으면 다음에 거절했을 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셋째는 보류의 거절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단칼에 자르면 상대도 마음이 상하고 내 마음도 편치 않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거절할 때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다.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저녁까지 알려드려도 될까요?”라며 잠시 보류할 시간을 가지면 상대에게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고, 자신에게도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 좋다.
5. 직장 상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상사의 유형을 파악하고 그 유형별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나도 10년간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에게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상사의 유형은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독불장군형이다. ‘내 말이 무조건 옳다’라고 생각하고 명령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나의 방식을 제안하더라도 상사의 말이 옳다는 걸 먼저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저번에 말씀하신 건 우리 상황에 맞지 않아서 이렇게 바꿔봤습니다.”라고 하는 대신에, “부장님 지시대로 한 게 역시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라고 먼저 인정을 해준 후에 “그리고 세부적으로 우리 상황에 맞게 제가 좀 수정하고 보완해봤는데요, 혹시 더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요?”라고 말하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둘째는 책임회피형이다. 이런 상사에게는 내가 잘못하면 상사도 곤란해질 수 있다는 뉘앙스의 압박도 필요하다. “중요한 일인데 만약 제가 급하게 하다가 실수하면, 고객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혹시 이 프로젝트를 경험이 있는 분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면서 무리하게 책임을 떠맡지 않도록 조절해볼 수 있다.
셋째는 자화자찬형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능력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에 먼저 치켜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차장님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다음에 “그런데 막상 제가 구체화하려니 역량이 부족하네요. 혹시 세부적으로 어떤 것들을 접목하면 좋을까요?”라고 필요한 부분에 대한 도움을 요청을 해볼 수 있다.
넷째는 만사간섭형이다. 이들은 매사에 간섭하고 결정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이 욕구를 먼저 채워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계약 진행하기 전에 팀장님의 의견을 좀 구하고 싶어서요. 1안은 이런 장단점이, 2안은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결과적으로는 내 방식대로 유도하더라도 상사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상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는 그들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스트레스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구를 먼저 채워주는 말로 시작하면 상사의 태도도 훨씬 유연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6. 책 내용 중 대인 관계 용량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명함을 열심히 챙기고 인맥을 관리하려고 애도 썼다. 그런데 상담심리대학원에서 대인관계 욕구 용량에 대한 심리검사를 공부하면서 명쾌하게 깨달은 게 있다. 관계욕구 용량이 크다고 좋고, 적다고 나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대인관계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관계욕구 검사에서 나는 거의 최하점수가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늘 좁고 깊은 관계를 맺어왔더라. 친구도 아주 친한 친구 두세 명이면 족했고,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한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그게 훨씬 좋았다. 그런 나의 성향을 인정하고 나니 인맥관리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가기 싫은 모임에 억지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됐다.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라면 그렇게 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소수 몇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만족과 행복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나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대인관계 용량을 잘 알고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진짜 대인관계를 잘하는 법이다.
7. 너무 많은 인간관계로 인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관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 가지를 바꿔보는 방법이 있다. 하나는 ‘주제’, 또 하나는 ‘말투’이다. 날씨나 이슈, 업무, 취미 등 이야기의 주제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에 머물렀다면, 좀 더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주제로 바꿔보는 것이다. 나의 고민이나 관심사, 연애나 상처, 가치관, 가족이야기 등 좀 더 나를 노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다. ‘아직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라고 미리 선을 긋지 말고 나를 먼저 노출해봐라. 그러면 좀 더 끈끈한 사이가 되고 상대도 같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반말’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직업병처럼 늘 깍듯하게 상대를 존중하는 말을 해왔고 한참 어린 방송 스태프에게도 반말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10년간 방송생활을 하다 보니 적이 없는 대신에, 허물없는 친구도 얻지 못한 것 같다. 퇴사 후 한 모임에서 알게 된 나이가 많은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나에게 말 놓고 편하게 지내자고 한 제안으로 처음 반말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저 언니 동생 하며 말을 놓았을 뿐인데 갑자기 편안한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물론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다.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허물없는 사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꼭 반말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잘 맞고 편안한 친구로 욕심이 난다면 “우리 말 놓자!”라고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말투는 실제로 관계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8.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센스 있게 하고 싶어 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자기표현은 나 자신을 잘 알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대화의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닌, 진짜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둘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느껴지는 소소한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알고, 그것을 센스 있게 말할 수 있게 되면 나의 언어가 가져다주는 놀라운 힘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