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정치화된 워싱턴의 위험한 합의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美국방예산 부실관리·낭비에도

정치권 퍼주기로 통제불능상태

'군산복합체 위험' 여전히 숙제로




오늘날 공화당과 민주당은 거의 모든 이슈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다. 그러나 진짜 스캔들은 양당 합의가 이루어진 지점에서 터져 나온다. 가장 좋은 예가 국방예산일 것이다.

지난주 공화당의 주장대로라면 급진주의자로 채워진 하원 민주당이 2020년도 국방비로 7,330억달러를 책정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의 결정에 공화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하원의 승인을 받은 액수보다 2.3%가 많은 7,500억달러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방 자유재량지출(discretionary spending)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지출항목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고작 2.3%의 차이로 타협을 본 셈이다. 바로 이것이 요즘 워싱턴에서 이뤄지는 암적(cancerous) 합의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략적 일관성 결여, 부실한 관리, 어처구니없는 낭비에도 불구하고 팽창을 거듭하며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사반세기에 걸친 완고한 저항 끝에 국방부는 마침내 지난해 감사에 응했다. 통 큰 국방부 스타일에 걸맞게 감사비용은 4억달러를 웃돌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 등 대부분의 소속 기관이 감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패트릭 섀너핸도 “감사를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재건작업 특별감사관(The Special Inspector General for Afghanistan Reconstruction)은 155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이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7년까지 아프간 재건작업을 위해 책정된 총1,260달러 가운데 일부인 530억달러에 대한 지출내역을 검토한 결과였다. 그는 2018년도에 의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우리가 찾아낸 것은 만연한 낭비와 사기, 어처구니없는 예산남용,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교전 지역 밖에서 변기 위생 커버와 컵 구매에 각각 1만4,000달러와 1,280달러를, 식자재로 게와 바닷가재를 사들이는 데 460만달러를 지불한 사례가 적시됐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무장관은 재임 당시 “국방부 군악대원 숫자가 국무부의 현직 외무직원 전체 인원과 맞먹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는 노련한 기업가다. 그럼에도 펜타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자식 사랑에 눈먼 부모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는 지난해 트윗을 통해 “우리는 군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며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 이상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그의 국방비 지출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방비 지출을 위해서라면 돼지저금통까지 털면서도 국방부 이외의 거의 모든 정부기관 지출은 삭감했다. 국방부는 재정적으로 가장 무책임한 정부기관이지만 공화당은 늘 과다한 예산 퍼주기로 일관했다.

제시카 터치먼 매튜는 서평전문지인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실린 에세이에서 “우리는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율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국방예산은 경제 규모가 아니라 해당 국가가 직면한 위협과 관련해 책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국가의 GDP가 30% 늘어났다고 해서 군비지출까지 덩달아 30%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와 정반대로 위협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한 성장세를 보이는 경제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심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현 상황이 냉전시대에 비해 더 위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워싱턴의 국방비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다른 10개국의 국방예산을 한데 합친 액수보다 많다. 그리고 이 10개국 가운데 영국·프랑스·독일·일본·사우디아라비아·한국 등 6개국은 미국의 가까운 우방국이다. 또 사이버전·우주공격 등 진정한 미래의 위협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전략과 지출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워싱턴은 항공모함과 탱크에 수십억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을 계속 투입하고 있다.

국방부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나온다. 육군·해군·해병대가 자체적인 항공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굳이 공군을 따로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각 군은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자체적인 각개 대표부를 갖고 있을까.

2000년대 초반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는 (비록 이라크전을 엉망진창으로 관리한 탓에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방부에 구조적 일관성을 부여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국방부와 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대부분 좌초하고 말았다. 당시 럼즈펠드가 일부 군사기지 폐쇄 계획을 발표하자 코네티컷주에 지역구를 둔 롭 사이먼스 하원의원은 “내 선거구에는 단 한 개의 기지가 있을 뿐이고 나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며 강력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상하원의원 535명이 그와 동일한 반응을 보였으니 군 기지 부분 폐쇄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는 정부의 역할에 일종의 실용적 회의론을 지녔던 공화당원이었고 평화가 군사력과 외교적 개입의 결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해한 노련한 장군이었다. 그가 대통령 퇴임사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로부터 6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퇴임사는 역대 대통령이 남긴 가장 예언적인 경고 가운데 하나처럼 들린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