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내칼럼

[만파식적]키사스

  • 정상범 논설위원
  • 2019-07-23 18:50:45
  • 사내칼럼
[만파식적]키사스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이 친구를 공격해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든 한 청년에게 하반신 마비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당시 피해자는 배상금으로 100만리얄을 청구했고 이를 지급하지 못하면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결정이었다. 피해자가 당한 만큼 가해자에게 되돌려주는 형벌 ‘키사스(Qisas)’를 적용한 것이다. 다급해진 가해자의 노모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배상금 모금에 나섰고 인권단체들까지 끔찍한 형벌을 폐지해야 한다며 구명 활동을 벌여야 했다. 몇 해 전 이란 마약범은 교수형을 당했다가 하루 만에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키사스에 대한 판결’을 이유로 사형이 재집행될 위기에 몰렸다. 그는 마약 범죄가 율법의 대상이 아니라는 종교계의 해석을 받고서야 간신히 사형을 면하게 됐다.


키사스는 아랍어로 ‘보복’을 의미하는데 받은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기원전 1750년께 제정된 함무라비법전에서 최초로 발견되며 모세의 율법에도 ‘눈에는 눈’의 형태로 등장한다. 여기에 7세기 이후 법학자들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통해 구체적인 처벌규정을 만들었다. 통상 키사스는 계획적·비계획적 살인이나 중상해·과실치사·중과실치상에 적용된다. 특히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법관의 입회 아래 키사스에 의한 사형 혹은 디야라고 부르는 보상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부여된다. 만약 가해자가 가난하다면 공동체나 부족에서 대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키사스는 일찍이 유목사회에서 부족 간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오직 가해자만 처벌을 받아야 하고 원칙적으로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만 피의 복수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행위보다 처벌 자체가 무거워서 안 된다는 원칙도 내려오고 있다. 지금 극단주의세력이 서방의 공격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테러행위를 벌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키사스 외교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초 영국령 지브롤터 해역에서 영국 해병대에 의해 이란 유조선이 억류된 데 따른 보복조치라는 것이다. 이란 의회 의장은 “영국의 도적질을 그대로 돌려줬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인류가 보복이 보복을 낳는 증오의 악순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화제집중]

ad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