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전문연구요원 감축 땐 인재 해외 유출...국방·공공R&D 참여 늘려야"

■반발 큰 이공계 병역특례 축소

국방부, 병력자원 급감 따른 특례 대상 축소 방안 내달 발표

과학·산업계 "감축땐 日 등과 기술전쟁 벌일 인재 양성 차질"

교육부 등선 영어 성적 위주 선발 방식 탈피하는 대안 마련

"국방·공공부문 연구 참여자에 가산점...국방력 증대 선순환"







“교수님, 저 텝스(TEPS) 준비해야 하는데 한 학기 휴학하면 안 될까요. 아니면 학원 좀 다니게 2개월만 봐주세요.”(서울대 공대의 한 박사과정생)

국내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흔히 하는 요청이다. 한 학기 휴학이 여의치 않으면 2개월 정도만이라도 연구실에 나오지 않고 영어학원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며 병역을 대신하는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이 되기 위해 오히려 연구는 뒷전이고 영어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이 되면 4주 군사훈련 뒤 연구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국방부는 전문연구요원이 국방력 증대와 별 상관없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병역자원 급감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단계적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이공계 대학원은 물론 중소기업 산업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조차 미달 사태가 났다. 산업현장에서도 고급인력난에 봉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 기반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지난 40여년간 이공계 인재들이 경력단절 없이 연구에 전념해 대학·연구기관·기업의 핵심인력 확보와 해외유출 방지 효과를 올렸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따라서 전문연구요원을 국방·공공 연구개발(R&D)에 참여시켜 국방력 증대와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현재 전문연구요원은 연 2,500명 규모를 선발하는데 이 가운데 박사과정(석·박사통합 포함)은 1,000명(4대 과학기술원 400명, 113개 일반 이공계대 600명)이다. 4대 과학기술원(한국과기원·울산과기원·광주과기원·대구경북과기원)의 박사과정생은 시험을 보지 않고 100% 기존 연구실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해왔다. 일반 이공계대는 텝스(영어)·한국사·대학원 성적을 따지는데 영어가 결정적이라 박사과정생들이 영어에 매달리는 고질병이 지속됐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영어 위주의 선발 방식은 바꾸되 전문연구요원을 키워 국방력 강화를 꾀하는 윈윈 방안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나머지 전문연구요원 1,500명의 경우 석사 이상 학위 취득 후 중소벤처·중견기업 부설연구소(1,062명)를 비롯, 특정연구기관·정부출연연구원·과학진흥연구소·국공립연구기관·자연계대학부설연·방위연구소에서 근무한다. 역시 4주 군사훈련 뒤 3년간 근무하는데 수요처에서 규정에 따라 뽑고 있다. 마창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부회장은 “그동안 7,000여 중소·중견기업에서 5만여 석·박사 연구원이 기술혁신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8월 말 결론=국방부는 연간 9,000여명(8개 분야)의 병역특례요원 중 오는 8월 말께 전문연구요원을 비롯해 마이스터고·특성화고 졸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산업기능요원(4,000명·중소벤처기업부)과 승선근무 예비역(1,000명·해양수산부)에 대한 축소 방침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중보건의(1,400명·보건복지부) 등 나머지는 감축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2016년 6월 전문연구요원 축소 입장을 피력한 뒤 마무리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국방부는 각 부처와 대체복무관계부처협의체를 운영해왔다. 이인구 국방부 인력정책과장은 “병역자원 축소로 전문연구요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이른 시일 내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대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의 부처 간 조정을 거쳐 박사과정생을 대상으로 기존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1,000명의 정원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 학생들이 지난 2016년 6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단계적 축소·폐지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 학생들이 지난 2016년 6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단계적 축소·폐지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계·학계·산업계 모두 반발=과학계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등 첨단 기술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문연구요원을 축소할 경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고급인재 양성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상민·이종걸·노웅래·이원욱·김성수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전문연구요원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정무영 울산과기원 총장은 “전문연구요원이 축소되면 해외로 두뇌유출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공계 대학원 미달사태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대학가에서 제기된다. 4대 과기원과 서울대·고려대·연세대·포항공대 등 총 8개대 학생회도 ‘전문연구요원감축대응특별위원회’를 꾸려 “오히려 늘려야 할 판에 줄이려 하느냐”며 반발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고급두뇌 양성의 제도적 기반이 훼손돼 더 큰 국가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30% 증원을 촉구했다. 산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기현 성신전기공업 대표는 “우수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마창환 부회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상황에서 기술혁신 의지가 꺾이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국방·공공 R&D와 연계해야=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존 연구실에 근무하는 1,000명의 전문연구요원이 국방·공공 부문 연구에 기여하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교육부는 전문연구요원 선발 시 ‘학업과 연구역량’에 대한 서면·면접평가를 진행하되 국방·공공 R&D 수행 시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기존 평가기준인 텝스·한국사·대학원 성적은 일정 기준만 요구하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 교수인 이우일 차기 과총 회장은 “전문연구요원 시험이 사실상 영어 성적에 좌우되는데 국방·공공 R&D 수행 시 가점 부여는 국방력 증대와도 부합돼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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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도 4대 과기원의 전문연구요원 선발 시 국방·공공 R&D 과제에 2개 이상 참여하고 있는 학생연구원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기초과학 분야는 국방·공공 R&D와 관계없더라도 연구계획서를 평가해 20%를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국장은 “국방 R&D 참여자를 우선 선발하고 공공 R&D 중에서는 재난재해와 미세먼지·감염병 등 질병관리, 교통사고 경감 등의 연구자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필요하면 국방부와 공동으로 심사, 선정할 방침이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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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탈피오트’ 제도로 연구요원 6년 복무…전역 후엔 창업 연계도

[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해외 이공계 병역특례 사례는



탈피오트 소속 군인 연구원들. /사진=Courtesy of Yonatan Zalk탈피오트 소속 군인 연구원들. /사진=Courtesy of Yonatan Zalk


우리나라와 안보환경이 비슷한 이스라엘은 남녀가 모두 군대에 가는데 연구인력이 군에서 계속 국방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도록 ‘탈피오트(talpiot) 제도’를 운영한다. 탈피오트는 히브리어로 ‘최고 중 최고’를 뜻하며 지난 1979년 도입됐다. 성적이 우수한 50~60명의 이공계 고교 졸업자를 뽑아 히브리대에서 40개월간 장학금을 지급하며 부대훈련과 대학 교육을 함께 실시한다. 이후 군부대와 방산업체에서 중위로 임관해 6년간 연구요원으로 첨단 군사장비 개발과 사이버전 등의 대응에 나서도록 한다. 이때 창업교육을 받고 전역 후에도 연구를 계속하거나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는다. 보안시스템 업체 체크포인트와 통화감시장치 업체 나이스시스템, 인간 게놈 해독·신약개발사 컴푸젠, 지불보안 업체 프로도사이언시스(미국 e베이가 인수) 등 수많은 글로벌 벤처기업이 탈피오트에서 나왔다.

우리나라는 석사 이상 이공계 연구원을 위한 연 2,500명 규모의 전문연구요원 외에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해 연 20여명의 과학기술전문사관을 뽑아 2017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3년간 복무하도록 한다. 이들은 ROTC처럼 대학 3학년 때 선발해 2년간의 교육을 거친 뒤 소위로 임관해 중위로 전역한다. 육군은 석사 이상을 대상으로 군사과학기술병을 매년 30명씩 선발한다.

역시 징병제 국가인 중국은 국방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고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특화된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는 ‘2110공정’ 제도가 있다. 이곳을 졸업하면 연합참모부 산하 연구소에서 장교와 군무원으로 복무한다. 성적과 학위에 따라 임관 계급을 달리한다. 러시아도 징병제를 하는데 대학 졸업자 중 과학기술 우수인력을 선발해 국방 R&D 인력으로 활용한다. 이들은 군에서 부여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다가 1년 후 중위 또는 군 연구원으로 전환한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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