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철수칼럼] 우물안 외교에서 벗어나라

미중 패권경쟁에 日경제보복까지

한반도 둘러싼 안보환경 급속 악화

남북관계에 매몰되면 생존 어려워

넓은 안목 갖고 외교안보정책 펼때

오철수 논설실장오철수 논설실장



중국 황하강에 살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까지 나왔다. 하백은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탄식했다. 그러자 바다의 신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는 말이 나왔다.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사는 좁은 울타리를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하듯 식견이 좁은 사람은 세상을 폭넓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고사를 떠올리는 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편협성은 2017년 발표된 5대 국정목표를 보면 잘 드러난다.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지향해야 할 목표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제시했다. 이 바탕 위에서 나온 정책이 남북관계 개선이다. 이후 정부는 북한 핵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남북관계 개선에 주안점을 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사드 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핑계로 정식 배치를 차일피일 미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반발하면서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 북한 비핵화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줄곧 강조했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을 의식해 제재완화를 동반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미국과 엇박자를 냈다. 미국 관료들 사이에서 한국은 북한 문제에만 매달리는 ‘원 이슈 컨트리(one issue country)’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우리나라에는 좋을 게 없다. 미국이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에도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독도 상공에서 도발을 감행한 것도 한미 동맹의 고리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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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외교안보 정책의 초점을 남북관계에만 맞추다 보니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제질서가 심하게 흔들리는 시기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세계 안보·경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70년 이상 유지돼 온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가 하면 교역 상대국에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중국은 은근히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G1)으로 등극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양국은 경제를 넘어 안보를 놓고도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중갈등이 커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국가는 한국이다.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 와중에 사드 배치와 인도·태평양전략 등 현안마다 자국 편을 들라고 공공연히 압박하고 있다. 이런 때 정부가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으면 국가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잖아도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주변국과의 충돌을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또다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이 격돌하는 구한말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외교·안보와 관련한 우리의 전략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에드먼드 버크 영국 정치철학자는 “변화할 수단을 갖지 못한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다”고 설파한 바 있다.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지는데 수십년 전의 이념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으면 국가를 보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좁은 우물 안 사고에서 벗어날 때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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