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수출 규제의 품목을 발표하고 시간이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정부는 한편으로 수입을 다변화하고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여론에 일본 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대항 논리를 펼치고 있다. 업계도 한편으로 정부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품의 재고를 확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제 상황은 소재와 부품을 둘러싼 주체, 즉 정부와 기업에 한정되지 않고 각 분야로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본산 제품을 불매한다든지 관광을 취소한다든지 다양한 분야에서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일본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불매운동의 강도가 훨씬 높아지고 기간도 꽤 길어질 것이다.
이렇게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지금보다 심각하게 진행된다면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의 품목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업계의 고통이 가중되고 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후폭풍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음식을 파는 요식업계는 ‘일본’이라는 이유로 불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일본 여행만이 아니라 여행 자체를 연기하면 관광업이 위축될 수 있다. 불매운동이 더 위력을 발휘하려면 오래가야 할 테고 오래가기 위해선 처음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엉뚱한 피해자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자신이 한 일로 피해가 일어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인과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제3의 사안으로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리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생겨날 수 있는 엉뚱한 피해자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국가적 사안에 대한 시민의 자발적 활동이므로 그로 인한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고 할 수는 있다. 예컨대 일본 여행을 예약했다가 취소하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일본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면 개인이 수수료를 부담할 수 있다. 요식업·관광업에 종사한다면 일회적인 영향이 아니라 생업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불매운동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주려다가 한국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
엉뚱한 피해와 관련해 그럴듯한 고사가 있다. ‘여씨춘추’에 따르면 송나라 사마 환이 보주(寶珠)를 가지고 있었는데 죄를 지어 도망갔다. 왕이 보주의 소재를 묻자 어떤 사람이 사마 환이 도망가다 연못에 빠뜨렸다고 대답했다. 이에 왕은 사람을 시켜 연못의 물을 다 퍼내서 보주를 찾게 했지만 보주는 찾지 못하고 물이 말라 물고기가 죽게 되었다. 원래 사마 환의 옥 때문에 그와 관련이 없던 연못의 물고기가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이를 엉뚱한 일로 재앙이 연못의 물고기에 미친다는 ‘앙급지어(殃及池魚)’의 고사가 생겨났다. 앙급지어는 다른 맥락의 이야기도 있다. 성에 화재가 나자 사람이 불을 끄느라 가까이 있는 연못의 물을 퍼가는 바람에 연못에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성에 난 불이 보물을 대신하지만 물고기가 피해를 봤다는 맥락은 비슷하다.
‘앙급지어’의 상황을 운수소관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게 된다. 앙급지어의 피해를 함께 고민하며 줄일 수 있다면 엉뚱한 피해자의 문제도 어느 정도 풀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우리 주위에는 엉뚱한 피해자를 줄이는 스마트 소비가 생겨나고 있다.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대신 국내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일본 제품의 품질을 대체할 수 있는 한국 제품을 소개하는 사이트가 생겨나고 있다. 요식업계도 식재료를 바꾸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주종을 한국 제품으로 바꿔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는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와중에도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피해를 줄이는 슬기로운 활동이다. 앙급지어는 상관없어 보이는 세상의 일이 새삼 서로 엉켜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