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소 아줌마들이 일을 안 하는 줄 알 거야. 우리는 유령인간이니까, 사람들 눈에 띄질 않으니까.”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차옥연 홍익대 미화반장은 대학 청소노동자의 처지를 ‘유령인간’이라 표현했다. 차 반장은 홍익대 홍문관에서 일하는 13명의 청소노동자를 이끄는 ‘맏언니’다. 그는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가니까 우리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면서도 “아줌마(청소노동자)끼리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기댈 곳이 돼준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성원들의 보금자리를 청결하게 유지해주는 대학 청소노동자들.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 빗자루와 걸레를 손에 쥐고 땀 흘려 일하는 홍익대 홍문관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학교 주인인 학생 위해 일하죠”…홍익대 청소노동자의 하루=지난해 3월부터 홍익대에서 청소일을 해온 이순영(63·가명)씨는 이날 오전 6시께 광역버스 첫차에 올라탔다. 출근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7시 반 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6시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방학 중이라 학기 중보다 조금 늦은 오전 8시까지 출근해도 좋다는 공지가 내려왔지만 이씨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해서다. 이씨는 “다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다”며 “오다가다 학생들이나 교수님들과 부딪치면 서로 불편하니 이른 시각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 왔어? 좋은 아침!” 이씨가 홍문관에 도착하자마자 다다른 곳은 지하 5층 미화원 대기실이었다. 대기실에 하나둘씩 도착한 청소노동자들은 인사를 나누고 업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짬을 내 집에서 싸온 떡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 이들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꿀 같은 시간이다.
시계가 7시30분을 가리키자 ‘언니들’은 각자의 담당 구역으로 흩어졌다. 이씨가 맡은 구역은 지상 5층. 5층은 스무 개가 넘는 대학원 강의실과 교수연구실, 대학원장실, 교직원 업무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이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도구함에서 큰 쓰레기봉지를 꺼냈다. 간밤에 쌓인 쓰레기로 꽉 찬 화장실과 복도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한 준비 단계다. 이씨는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하루 동안 큰 봉지 3개면 되지만 학기 중에는 오전에만 6봉지가 다 차서 하루에 10개가 넘는 봉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청소를 업으로 삼으며 웬만한 오물에는 익숙해진 이씨지만 음료수가 가득 든 채 버려진 일회용컵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난감하다. 복도에 놓인 쓰레기통은 캔류, 병·플라스틱류, 일반쓰레기 칸으로 나뉘어 있지만 분리수거가 제대로 돼 있는 날은 드물다. 액체를 버리도록 따로 마련해둔 통은 있으나 마나다. 이날도 일반쓰레기 칸에서 커피가 흘러넘치는 플라스틱 컵이 나왔다. 이씨는 “청소 시작 전에 큰 쓰레기봉지 바닥에 휴지를 깔아둔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리수거가 안 된 액체가 새어나와 학생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홍문관의 모든 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청소하는 것도 이씨 몫이다. 한 손에는 대걸레, 다른 한 손에는 손걸레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이씨는 우선 각 층 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이씨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만 에어컨이 나온다”며 “한 번에 네 개 층밖에 눌러지지 않아 수시로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엘리베이터 벽과 바닥을 닦으면서도 이씨가 연신 층 버튼을 새로 눌러야 했던 이유다.
엘리베이터 청소를 하고 나니 20여개의 강의실이 이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깨끗한 강의실도 있었지만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도화지 몇 장과 필기도구, 먹다 남은 과자와 음료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강의실을 치우던 이씨는 “학생들이 어젯밤 조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간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취업이 안 된다니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1990년대 IMF의 풍파를 맞아 사업을 접고, 이제는 장성한 두 자녀를 청소일로 키워낸 이씨에게 홍익대 학생들은 자식과도 같았다.
이날 오전 청소를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3시간. 청소가 다 돼갈 때쯤 학생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학생들이 자습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야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씨는 “4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있었는데 그날 밤 다리에 쥐가 났다”면서도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니 참을 수 있다”고 말하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오전 청소를 끝낸 청소노동자들은 11시께 점심을 먹기 위해 지하 6층 미화원 대기실에 모였다. 홍문관에는 3평 남짓한 크기의 지하 5층 대기실과 6평쯤 되는 지하 6층 대기실이 있다. 다 같이 모일 때는 그나마 넓은 지하 6층을 이용한다. 이들은 대기실에 있는 밥솥으로 지은 밥과 각자 집에서 싸온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깔깔대는 웃음소리 속 오가는, 세상 사는 얘기는 덤이다.
식사 후에는 청소가 재개됐다. 정오께 시작된 오후 청소는 5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주차장 공기 마셔, 샤워 못해”…들리지 않는 목소리=홍문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안심하고 쉴 공간이 못 됐다. 지하 미화원 대기실은 건물 지하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대기실 환풍구 사이로는 텁텁하고 습한 공기가 드나들었다. 주차장과 건물 내부를 잇는 유리문은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늘 열려 있다는 게 청소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차 반장은 “우리는 매연을 마시면서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문이 항상 열려 있으니 주차장 공기나 대기실 공기나 그 공기가 그 공기”라고 말했다.
이들이 마음 놓고 씻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홍문관에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이 한 군데도 없다. 이씨는 “대청소 시즌이 다가오는데 씻을 데가 없어 걱정”이라며 “30분만 일해도 옷이 다 축축해지는데 땀에 젖은 채로 귀가해야 해 불편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차 반장도 “청소를 하다 보면 얼굴과 몸에 약품이 튀는데 샤워를 못 하니 갑갑하다”면서 “일이 끝나고 귀가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땀 냄새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문관 청소노동자 심정숙(65·가명)씨도 “매번 걸레 빠는 장소에서 대충 씻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상 테이블 마련하려 고군분투하던 ‘투쟁의 역사’=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경비원들과 함께 지난 2012년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분회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일터는 홍익대인 이들은 대학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쟁해왔다. 차 반장은 “대학은 우리에 대한 일을 용역업체에 미루고, 용역업체는 원청인 대학에만 미루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대학 측에 끊임없이 청소노동자와 경비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한 결과 지난해 8,450원이던 시간당 임금은 올해 9,000원으로 올랐다. 차 반장은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대학 측에서 우리를 봐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협상의 문이 조금은 열린 것 같다”고 안도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홍익대의 진정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