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경제의 정치화 남발에 시장 왜곡…善惡논리 접근 안돼"

[ 지금 한국은 안보·경제 다층 위기<하-경제> ]

■서경펠로 긴급진단-국내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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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회에 100일 가까이 묶여 있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목을 매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추경 효과는 집행 타이밍이 관건인데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며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마치 추경만 통과되면 어려운 경제상황이 금방 해소될 것 같은 뉘앙스다. 하지만 서경 펠로들은 “거대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추경처럼 단기적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미봉책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경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과 시장경제·친기업 지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수년 전부터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우리 경제의 핵심과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 해법인 규제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는 외면했고 재정 일자리를 늘리며 ‘고용 숫자’를 포장하는 데만 치중했다. 디지털 플랫폼 중심 근로자가 늘면서 현실 속 일자리의 개념은 이미 바뀌고 있지만 우리 노동시장과 법체계는 여전히 지난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신산업 창출이 시급하다면서도 기존 산업과의 이해관계 조정, 규제개혁 갈등에서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초저금리와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도 사라진 지 오래다.




추경 등 재정에 기댄채 ‘땜질식’ 단기성과에만 매달려

4차산업으로 경제 패러다임 변화…‘친기업’ 전환 절실

70년대 사고에 갇힌 노동시장 ‘유연성 높이기’ 급선무

◇재정이 떠받친 1.1% 성장
=2·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1%로 반등한 데 대해 서경 펠로들의 평가는 박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민간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고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린 결과”라며 “경기가 활력을 찾는 신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도 “재정지출이 아니었으면 나올 수 없는 숫자”라며 “분기 성장률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과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비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상반기에만 올해 재정의 65.4%를 지출해 역대 최고 집행률로 분기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쓴소리다.


연일 악화하는 경기 여건의 대응책으로 정부가 강조하는 추경에 대해서도 펠로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지표가 부진한 만큼 추경은 지금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본다”면서도 “추경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유일한 해법’인 양 호도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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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활력 제고의 마중물로써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도 모순적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2·4분기 성장률만 봐도 정부 소비의 증가율이 민간 소비보다 세 배 높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하고 민간으로 넘길 게 많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민간지출의 승수효과가 더 높은데 정부가 대신 돈을 써서 경기 진작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경제정책을 정치적 문제로 끌고 가는 데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경기 둔화나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사례에서 보듯 철저히 구분돼야 할 경제 문제를 표심 자극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정치권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경제 문제를 자꾸 정치화하다 보니 타협의 여지도 줄어들고 있다”며 “그간의 실책에 대해 여야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투자할 이유가 없다”=정부가 투자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한시적 세제지원과 예산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규제는 기존 사업자만 보호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규제 완화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그런데도 모두가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서비스산업의 규제는 전혀 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혁신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회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가 ‘피해자’로 보고 선악의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혁신의 인센티브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택시업계 보호를 위해 ‘타다’와 같은 모빌리티 업체가 기여금을 내 택시 감차에 보태도록 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지금 투자가 안 되는 것은 기업이 비우호적인 경영환경, 노동·환경 규제 등으로 투자를 꺼려왔기 때문”이라며 “투자 심리를 고양하려면 경제정책 전체가 시장경제와 기업 친화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도 “투자는 5~1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어서 단기 지원만으로 의사결정이 크게 바뀌기는 어렵다”며 “기업이 수익성을 보고 투자할 수 있도록 시장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서경 펠로들은 가장 근본적 과제로 노동시장 개혁을 꼽았다. 이 교수는 “노동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1970년대 노동상황에 근거해 만들어진 근로기준법만 고쳐 쓰고 있다”며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나 낮은 고용률 개선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고용의 유연성·안정성 둘 다 낮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성, 노동비용, 규제, 경영권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이 상황에서 국내에 투자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가채무관리 정책도 같이 펴야”=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선제 인하를 단행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추가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았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상 돈이 더 풀려도 투자·소비처럼 생산적인 지출로 이어질지 확신하기 어려운 ‘유동성 함정’ 상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영 교수는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금리 인하 효과가 낮다”고 했고 이 원장은 “금리를 낮춘다고 투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아니다. 기업환경 자체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의 결합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세금 인상을 우려한 경제주체들이 소비 대신 저축을 늘려 경기의 활력이 더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일본의 선례를 타산지석 삼아 국가채무관리정책도 정교하게 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금은 금리를 인하해도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저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늘렸을 때 국민들의 반응까지 감안해 통화·재정·채무관리 정책을 함께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빈난새기자 박형윤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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