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대내외 악재로 우리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이 규모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균열이 생긴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을 비집고 들어와 삼성전자(005930)가 미래사업으로 제시한 비메모리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4일 미국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업체인 실바코는 중국 ‘실리콘파워테크놀로지’와 손을 잡았다. 중국 청두에 위치한 실리콘파워테크놀로지는 중국 내 반도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 자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날을 세우는 와중에도 중국 기업들은 기술제휴와 인수합병(M&A) 등으로 산업재편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조선소 설립을 앞둔 조선산업도 일본이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불공정거래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공식화하며 견제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3면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년6개월간 대규모 M&A 액수는 1억6,000만달러(약 1,894억원)에 불과하다. 삼성이 1월 이스라엘 멀티카메라 스타트업인 코어포토닉스를 인수할 당시의 금액이다. 같은 기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M&A 5건에 50억4,000만달러(지분투자 포함), 아마존은 7건에 37억6,000만달러를 썼지만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102조원(1·4분기 말)은 금고에 갇혀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글로벌 기업이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등으로 발이 묶인 상황이다. 여기에 삼성을 겨냥한 일본 정부의 수출 제재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일본의 제재 품목인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이 차세대 반도체의 극자외선(EUV) 공정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에서만 일부 활용하는 EUV 공정을 주력제품인 D램 생산에도 적용하려 한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소재 확보의 어려움으로 차세대 제품 개발 속도가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겨우 중국과 1~2년 격차를 벌려놨는데 미래 경쟁에서 낙오될까 걱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