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백색테러

홍콩 범죄인인도법 반대 시위에 나타난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흰옷 남성들./연합뉴스홍콩 범죄인인도법 반대 시위에 나타난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흰옷 남성들./연합뉴스



1947년 2월 타이베이시 노점에서 담배를 팔던 한 여성이 단속반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항의하는 시민을 향해 경찰이 발포해 한 명이 숨지자 시위가 확산됐고 장제스 국민당 정권은 무력 진압했다. 이후 3개월여 동안 많은 대만인이 학살됐는데 서방 언론은 적어도 3,0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집권 후 장제스 국민당 체제에서 벌어진 학살을 백색테러로 규정하고 공약대로 진상조사와 사후 조치에 나섰다. 차이 총통은 2017년 타이베이시에서 열린 2·28사건 70주년 기념식에서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정의 실현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해에는 장제스 정부에서 희생된 1,000여명의 첫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백색테러는 우익에 의한 테러를 말한다. 프랑스 혁명기인 1795년 혁명파에 대해 왕당파들이 가한 잔혹한 폭력 보복행위가 기원이다.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표장이 흰 백합이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기도 하다. 러시아 혁명기 볼셰비키에서 시작된 좌익 적색테러와 대비된다.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단체 KKK단의 만행은 대표적 백색테러로 꼽힌다.

관련기사



지난 21일 홍콩의 한 지하철역에서 흰색 옷을 입은 남성 100여명이 범죄인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을 무차별 테러했다. 서방 언론들은 이를 백색테러라고 비난하며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나 중국 중앙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최근 열린 백색테러 규탄 집회에는 홍콩 유명 대학 총장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대만과 홍콩에서 각각 벌어진 무차별 학살과 폭력 사건에 백색테러라는 똑같은 이름이 붙은 것은 아이러니다. 대만 백색테러에는 국민당 정권이, 홍콩 폭력 사건에는 국민당과 맞섰던 중국 공산당 정권이 관련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미래에는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서라면 감옥을 결코 겁내지 않는 이들에 의해 역사가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중국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홍병문 논설위원

홍병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