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연합회가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삭제한 정관개정안을 결의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법정 경제단체다. 이처럼 법정 경제단체가 자체적으로 ‘정치 활동 금지’ 족쇄를 풀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명분은 ‘소상공인 생존권 확보’지만 사실상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에 따른 반발로 해석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각 지역에서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 등을 요구하는 대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데에 목소리를 낼 방침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30일 서울 동작구 중소기업연구원에서 ‘2019년도 제 2차 임시총회’를 열고 정관 제 5조를 삭제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지난 1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 1차 소상공인연합회 임시총회’에서 정치 관여 금지 조항 삭제안이 결의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소상공인연합회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 △특정인을 당선되도록 하는 행위 등 정치에 관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없게끔 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하면서 소상공인연합회가 ‘정치화’에 첫발을 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정관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중소벤처기업부의 법리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처럼 소상공인연합회가 ‘정치화’에 나선 건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이나 최저임금 내 주휴시간 산입 철회 등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삭감이나 동결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감안하지 않는 일방적인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정치 관여 금지 조항 삭제는) 특별한 정당에 대해 찬반을 표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진 않을 거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지난해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과 관련해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차기 총선에 야권 후보로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 거듭 제기됐었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번 정관 개정이 특정 정당과는 무관하며 ‘최저임금 관련 이슈’ 등에서 원활한 이슈파이팅을 위한 개혁과제라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모습이다. 최 회장은 ‘정관이 개정되면 현 정권에 대해 규탄운동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최근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왔을 때도 ‘왜 민생을 저버리냐’고 강하게 얘기했다”며 “우린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이) 소상공인당 창당이나 특정 정당 낙선운동과도 무관하다”고 했다.
이 맥락에서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꾸려 ‘최저임금 제도개선 소상공인 결의대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이에 이날 임시총회에선 결의대회를 위한 실행위원을 구성하는 안이 통과됐다. 이운형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2020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소상공인의 3대 과제인 규모별 차등화, 최저임금 대책 방안 마련, 그리고 최저임금 월환산액 표기 삭제가 무산됐다”며 “지난해 소상공인을 외면한 최저임금 결정이 이뤄지면서 총 3만여명이 ‘8.29 소상공인 국민대회’를 개최했으나 2020년 결정과정에서도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상공인연합회는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 열릴 예정인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가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의미에서다. 최 회장은 “2020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다음날 박 위원장은 ‘규모별 차등적용에 대한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제도개선위원회가 꾸려질 수 있다’고 했다”며 “최저임금위원장이 (규모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제도개선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