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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3,000개 명함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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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듣고 기억한다고 한다.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삼백 명 정도인데 그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서른 명, 절친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 그렇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건 언제나 한 명뿐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김연수 ‘시절일기’, 2019년 레제 펴냄)


지금 내 휴대폰 주소록에는 2,355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있다. 휴대폰을 바꿀 때 일일이 사진과 전화번호를 정리하던 것도 옛일이고 그대로 데이터만 빼서 새 기계에 심다 보니 휴대폰은 과거와 오늘의 무수한 인연들로 수런거린다. 주소록을 들여다보면 이게 누구더라 싶은 이름과 동명이인도 무수히 많다. 김연수 작가에 따르면 이들 중 내가 얼굴과 이름을 매칭할 수 있는 사람은 300명 안팎일 것이다. 여기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10%로 줄어 30명 정도, 그리고 다시 10%를 추려 ‘절친’ 세 명을 꼽고 나면…. 아, 헛헛하다. 최근 통화목록을 한참 내리고 또 내려야 겨우 절친에게 가닿는 이 번잡한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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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000명의 이름과 300명의 얼굴과 3명의 마음 가운데서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나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지난 10년간 수시로 막막함과 망각이 침범하는 시절에도 기억하고 붙잡고 남기기 위해 묵묵히 써온 글을 묶어낸 이 책에서 이렇게 썼다. “잊지 말 것.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라는 것을.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이라는 것을.” 세상의 번잡함과 세월의 흐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언젠가 그가 300명의 얼굴과 3,000명의 이름으로 숨을 그날이 올지라도, 지금 이 순간 사랑하고 있으므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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