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금리 인하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세 가지 이유를 댔다. △리스크 관리 차원의 보험적 성격 △약한 글로벌 성장과 무역긴장 △낮은 인플레이션이다.
당장 미중 무역전쟁이 맞물려 글로벌 경기는 빠르게 식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하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2%로 1년 전 전망치와 비교하면 0.7%포인트나 낮다. 올 상반기 중 식료품과 에너지 분야를 뺀 미국의 근원물가 상승률은 1.6%에 그쳐 연준 목표치인 2%를 한참 밑돌았다. 경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지난 2009년에 시작된 미국의 경기확장은 올 7월까지 121개월째 이어지며 사상 최장 기록을 수립했다. 미국의 지난달 민간고용 증가분은 15만6,000명으로 월가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6월 소비지출도 전월 대비 0.3% 늘어 시장의 예상에 부합했다. 이번 FOMC의 금리 결정 투표에서 위원 10명 가운데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 총재와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은 총재가 금리 인하에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은 금리를 낮출 때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파월 의장이 10년7개월 만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도 “장기금리 인하의 시작이 아니다. 보험적 성격”이라며 본격적인 금리 인하 추세가 시작됐다는 시장의 기대에 선을 긋고 나선 것은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 처한 그의 고민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금리 인하를 가리켜 그가 쓴 ‘중간 사이클 조정(midcycle adjustment)’이라는 말에 시장은 적잖이 동요했다. 이는 연준이 경기 중간 잠시 조정에 나섰다는 의미다. 금리 인하 추세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감에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33.75포인트(1.23%) 급락한 2만6,864.27에 거래를 마치는 등 미 증시 3대 지수는 줄줄이 하락했고,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는 약 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다만 연준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파월 의장은 이날 “나는 그것이 단지 한 번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 전망에 대한 시장의 의견은 엇갈린다. 뉴욕타임스(NYT)는 “연준이 현재 상황을 1990년대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1995년과 1998년에 각각 0.25%씩 세 차례의 보험성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경기침체에 직면한 2001년과 2007년 지속적인 금리 인하에 나선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한두 차례 추가 인하가 가능하다. 폴 애시워스 캐피털이코노믹스(CE) 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의는 ‘매파적’이었다”며 “다음 금리 인하 시기는 (9월이 아닌) 올해 말로 미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ING 등 일부 금융기관들은 당초 예상대로 9월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경기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려다 보니 애매한 신호만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리 인하가 향후 경기침체 때 써야 할 카드만 낭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시장의 우려와는 별도로 미국의 금리 인하로 다른 주요국들은 통화정책에 여력을 갖게 됐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1년4개월 만에 6.5%에서 6%로 0.5%포인트 낮췄다. 이는 1996년 기준금리 도입 이래 가장 낮다. 일본은행의 아마미야 마사요시 부총재도 1일 “경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통화부양책을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존 경제가 더 둔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유럽중앙은행(ECB)이 9월에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