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와인세




2008년 봄 홍콩 중심가의 와인 매장 곳곳에 존 창 당시 재무장관을 칭송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세금이여 안녕! 고마워요 존!’이라고 적힌 플래카드에는 와인 가격 인하를 알리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홍콩을 아시아의 와인 허브로 만들겠다며 40%에 달하던 와인세를 철폐한 당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홍콩 정부는 주세 폐지로 막대한 세수 감소가 예상됐지만 와인 경매와 무역 활성화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훨씬 클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한국 등 세계 각국 와인 마니아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음은 물론이다.


와인은 예로부터 세금과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와인이 원래 소수계층의 애호대상이어서 세금을 때려도 반대 의견을 내놓기 쉽지 않은데다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돼 과세대상으로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와인은 기원전 3000년부터 이집트와 서아시아 간의 주요 교역물품에 이름을 올렸고 당시 벽화에는 와인 거래상에게 별도의 세금을 매겼다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와인 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금을 와인으로 지급하고 개인 간의 빚도 와인으로 정산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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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와인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다. 1693년 영국 왕 윌리엄 3세가 프랑스 와인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자 수입상들은 새로운 와인기지를 찾아 유럽 전역을 뒤지다가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장기간의 운송이 가능한 레드와인을 발견했다. 오늘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프랑스 코냑의 와인업자들은 세금 부과기준이 오크통으로 바뀌자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와인을 증류하고 부피를 줄여 수출하는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증류액이 오랜 항해와 보관을 거치면서 맛과 향이 뛰어난 ‘브랜디와인’이라는 새로운 술로 태어났다. 반면 와인 생산의 최적지였던 그리스는 과거 오스만튀루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거운 세금과 규제로 와인 산업이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계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부과방침에 맞서 프랑스산 와인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프랑스는 곧바로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맞받아쳤지만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은 승자를 가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을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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