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일관계 대등하게 만드는 전략

양기웅 한림대 정치행정학 교수·글로벌협력대학원장

韓 '日 부품소재 약점' 극복 위해

양국관계 포지티브섬으로 만들고

상호의존 거래 다층·다면화하는

'중첩적 안전 보장 전략' 세워야

양기웅 한림대 교수양기웅 한림대 교수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거듭하던 한일관계에서 일본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첨단 부품소재 공급을 무기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서 국가 간 상호의존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문제는 상호의존의 대칭성에 있다. 상호의존이론을 제안한 로버트 코헤인과 조지프 나이 교수는 상호의존의 대칭성을 측정하기 위해 민감성과 취약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민감성이란 어떤 외부적인 변화에 따른 비용을 의미하고 취약성은 외부적 변화의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치러야 하는 비용의 정도를 의미한다.

이 개념을 지금의 한일관계에 적용한다면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의 상호의존 관계는 민감성 차원에서 대칭적이다. 일본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한국 반도체 회사는 일본산 부품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문제는 취약성이다. 한국은 일본의 부품소재를 대체하기 어렵지만 일본은 한국 외에서도 반도체를 구매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은 마치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처럼 일본산 부품소재에 주력 전략산업의 명운을 걸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다. 한국은 일본의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취약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관련기사



첫 번째 전략은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전략이다. 거래의 수입선을 제3국으로 다양화하거나 국산화를 통해 거래에서 자급률을 높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지 단기 전략은 될 수 없다. 또 국산화 전략은 비교우위의 효율성을 희생시킬 수 있다. 중남미 국가의 수입대체 전략이 대참사로 끝났던 역사적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연계’ 전략이다. 이는 특정 거래에서의 높은 취약성을 다른 분야와 연계해 균형을 잡는 전략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계 방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제까지 한일 양국이 충돌 일보 직전에 갈등을 해소했던 배경에는 미국의 중재가 작용한 측면도 컸지만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일본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일본에 대북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카드를 잘못 연계하면 취약성은 개선되지 못한 채 한국은 일본은 물론 미국으로부터도 고립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중첩’ 전략이다. 이는 상호의존적 거래를 다층화·다면화해 상호의존을 심화시키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고 안보적으로 미일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일본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하며 미국의 전략산업이 일본산 핵심 부품소재에 보다 더 의존하게 만들었던 전략이다. 또 다른 예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러시아를 유럽시장 가스 수출에 더욱 의존하게 함으로써 취약성의 균형을 회복한 사례이다.

우리가 선택할 전략은 바로 ‘중첩’ 전략이다. 이 전략의 이점은 첫째,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비교우위의 효율성을 보장해준다. 한국 반도체 회사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더욱 집중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이 전략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제로섬이 아니라 포지티브섬으로 만든다. 셋째, 이 전략은 양국이 공유하는 이익의 질과 양을 높여 탈냉전시대에 맞는 서로의 전략적 이익과 가치를 증대시켜준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일본은 물론 미국·중국과의 비대칭적 상호의존 관계를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상호의존을 다층화·다면화하는 ‘중첩적 안전보장전략’을 짜야 한다. 이것이 한일관계를 대등하게 하고 한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방책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