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눈도 안맞춘 한일 외교수장…55분 회담, 간극 너무 컸다

[빈손으로 끝난 방콕담판]

안부인사도 없이 내내 굳은 표정

韓, 양국관계 엄중 파장 경고에도

日, 징용배상 문제 해결만 강조

美 중재여부 마지막 변수될 듯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일(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냉랭한 표정으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일(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냉랭한 표정으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간신히 만났지만 성과는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목록) 제외 결정을 하루 앞둔 1일(현지시간) 방콕에서 마주 앉았으나 강 장관은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 고노 외무상은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만 강조했다. 입을 앙다문 채 만난 양국 외교 수장은 55분간의 회담 끝에 잠시 비공식 환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돌아설 때까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외교적 협의를 통한 한일 갈등 해법 마련까지 여전히 긴 험로가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회담이었다.

한일 외교장관회담은 이날 오전8시45분께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무채색 정장을 입은 강 장관과 분홍색 넥타이를 맨 고노 외무상은 회담 초반 제대로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회담 직후 강 장관은 한국 취재진들로부터 ‘화이트리스트 제외 중단 요청 여부와 일본 측의 반응’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그 요청은 분명히 했고 그것이 만약에 내려진다고 하면 양국관계에 올 엄중한 파장에 대해서도 분명히 얘기했다”고 답했다.

일본 측 외교 당국자는 일본 취재진에 “현재 최대과제인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징용 관련 일본 측 표현)’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한국 측의 책임이고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도록 강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결국 한일 외교 수장이 회담 중 서로 각자의 문제만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의 핵심 지지세력인 보수층 사이에 한국에 대해 강경 여론이 큰 상황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으로 이를 뒤집는 것은 애초에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수출규제 조치 중단 요구를 일본이 끝내 거부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아베 내각은 2일 오전 예정대로 각의에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의 경제전쟁이 안보 영역으로 확전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특히 한국 정부가 일본의 추가 보복조치에 대해 필요한 모든 대응을 한다는 강경 기조를 수차례 언급한 만큼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강행 의사를 밝힌 만큼 이제 한일관계는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며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만큼 청와대 역시 안보상의 이유로 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강 장관도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해 “일본의 각의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필요한 대응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보상의 이유로 취해진 만큼 우리 한일 안보의 틀, 여러 가지 요인을 우리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얘기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0215A03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일정


다만 한미일 3각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에서 예상외로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일운동 등에 부담을 느낀 아베 신조 내각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한 실제 집행을 유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최은미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입장도 영향이 있고 당초 의도보다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생각보다 거세진 측면도 있기 때문에 실제 집행은 유예하면서 한국과 협상의 여지는 열어둘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2일로 예정된 한미·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 관심이 쏠린다. 동북아에서 패권을 지켜야 하는 미국은 한일 갈등이 안보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미국이 강제로 한일 간 화해를 추진하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한일 갈등을 해소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실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은 이날 오후 열린 미국-태국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내일(2일) 한일 양국 외교 장관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오늘 고노 외무상과 잠깐 만났다. 한일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일은 매우 중요한 관계”라며 “한일이 양국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매우 희망적”이라고 덧붙였다.

강 장관도 미국의 한일 갈등 중재 역할, 즉 신사협정 가능성에 대해 “미국 측의 중재협정 등 여러 가지 보도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재 이전에 우리 측에서 수출규제 문제, 또 한일 간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콕=정영현기자 박우인기자 yhchung@sedaily.com

박우인·정영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