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하락 장에서 중국과 함께 유난히 부진했던 한국 주식시장은 2019년 들어서도 주요국 중 거의 최하위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나 나스닥 등 미국 주요 지수가 올해 들어 20% 이상 오르고 중국 증시도 18% 정도 상승한 데 비해 코스피는 연초와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정도면 심각한 차별화라고 할 만하다.
우리 증시가 다른 나라보다 눈에 띄게 부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미중 패권 다툼, 반도체 시장의 침체,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무역 규제 등이 주로 거론된다. 하지만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면 결국 남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세계화의 역행 현상과 1990년대 이후 세계화 과정에서 편중이 심해진 한국의 경제 구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온 미중 패권 다툼은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의 문제도, 단순히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소비와 이머징 국가의 생산을 기본 축으로 형성된 세계화·분업화 과정에서 미국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 금융위기 이후 커진 양질의 일자리 요구가 맞물려 나타난 고립주의가 다툼의 원인이었다.
한일 갈등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버블 붕괴 이후 30년간 디플레이션 위험에 시달리며 한국 경제와 격차가 크게 줄어든 일본의 위기감이, 현재의 우위를 무기 삼아 한국의 신성장 산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표출된 느낌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자국의 미래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할 게 뻔하다.
문제는 우리다. 주요국의 고립주의가 강화될수록 세계화 과정에서 경제 구조의 편중이 심해진 우리나라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현재 37% 이상으로 미국의 8%, 일본의 14%에 비해 크게 높다. 또한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육박한다. 일본에서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자동차 산업의 13%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이번 일본의 무역 규제로 알려진 것처럼 반도체 산업의 일부 소재는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일부 국가의 소재 수입과 일부 산업, 수출에 편중된 경제 구조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투자자들은 이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중된 경제 구조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지원 의지와 시장의 기대가 맞물려 바이오 기업으로 자금이 편중된 점도 부메랑이 돼 우리 주식시장을 억누르고 있다. 올해 초 코스닥기업의 바이오·헬스케어 업종의 시가총액 비중은 27%를 상회했는데 인보사 사태와 일부 업체의 임상 실패 등이 겹쳐 이제는 코스피 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셀트리온을 포함해도 23%대로 주저앉았다.
물론 우리 경제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의존도가 높다는 점 때문에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처럼 글로벌 수위권의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가 훨씬 더 많다. 많은 국가가 우리를 성장의 모델로 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하며 내수 경제도 활성화시켜야 한다. 지금의 주식시장 부진은 앞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가격으로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