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여명] 한일, 왜 협상해야 하나

문성진 정치부장

北核문제 등 협력할 일 태산인데

아베는 개헌 노린 경제도발 반복

20년전 한일 오부치 선언 불구

여전히 '다정한 이웃' 되지 못해

더 늦기 전에 공생의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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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골대가 축구장에 놓여 있다. 한국·일본·미국의 골대다. 세 팀의 공방이 어지럽다. 연신 강슛을 쏘는 일본, 슬슬 공을 돌리는 미국, 쇄도하는 골을 막기에 급급한 한국이 안쓰럽기만 하다.’ 지난주 말 저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덴마크 미술가 아스거 욘의 설치작품 ‘삼면축구’를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씁쓸한 상상이 떠올랐다.

우리의 협상제안도 미국의 ‘현상유지’ 중재안도 끝내 뿌리치고 마침내 일본이 ‘경제 선전포고’를 했다. 한일 경제전쟁 공포는 가공할 수준이다. ‘레드라인’을 넘어버린 일본은 제3, 제4의 공세를 취할 태세다. 한일관계 전문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5일자 본지 인터뷰에서 “일본은 한국에 ‘제2의 IMF’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다. 3차 보복의 타깃은 금융 분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이제 시작일 뿐”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공세는 단기간에 멈추지 않을 듯하다. 지난 1일 자민당 의원총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 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 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과의 정세를 엄중하게 만들어 개헌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겠다는 속셈을 여과 없이 드러낸 발언이다.

미국도 한일 경제전쟁을 마냥 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정책 중 하나인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공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안보를 핑계로 연이은 경제보복에 나서는 까닭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유지할 명분이 흔들리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일 경제전쟁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면 미일동맹은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이다. 일본의 경제도발로 인도·태평양전략의 린치핀이 헐거워지거나 코너스톤이 깨져나가는 상황을 미국이 좌시할 리 없다. 결국 아베의 경제전쟁 도발은 그가 그토록 바라는 개헌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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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은 더 늦기 전에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일 방콕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외교 당국 간에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소통을 이어나가야 한다”면서 일본과의 대화 계획과 관련해 “비공식, 공식적으로 이어진 스케줄들이 있다”고 했다. 우리의 뜻이 대화에 있는 만큼 일본도 경제보복은 그만 접어두고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에게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구축, 동아시아의 평화 정착, 한일 경제의 상생발전 등 함께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 한일은 역시 다투면 잃기만 하고 협력하면 얻을 것이 많은 이웃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고교생들에게서 한일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느꼈다.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를 요구한 고교생들은 “20년, 30년 후 우리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한국과 일본이 다정한 이웃 나라이기를 원한다”고 외쳤다. 한국과 일본은 왜 협상해야 하는가. 더 나은 미래를 우리 후대에 물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어설픈 화해로는 깊디깊은 갈등을 메우기는 어렵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그랬다.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흐르도록 한일은 ‘다정한 이웃’이 되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김대중-오부치 선언’보다 더 굳건한 한일협력의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앞서 소개한 미술작품 ‘삼면축구’에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에서는 눈앞의 승패가 아닌 ‘공생’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정신이 담겨 있다. 한일도 눈앞의 승패에서 ‘공생’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만 안겨줄 경제전쟁을 한일이 더 이상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다. /문성진 정치부장 hnsj@sedaily.com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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