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뜨겁다. 일본 제품뿐 아니라 음식, 여행, 교류 모두 금기시되고 있다. 일본인과의 연애, 시바견과 같은 일본개를 기르는 것조차 비난과 견제의 대상이 되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핵심측근들이 ‘항전’을 촉구했다. 이어 공무원과 지자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물산장려운동’을 하자는 말도 함께 나왔다. ‘지나가는 들불’이라는 기우도 있지만 되레 반일의 불꽃과 어울려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난달 4일 일본이 취한 반도체 3대 소재에 대한 개별허가제 시행이 시발점이다.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유니클로 본사 임원의 발언은 기폭제가 됐고 불매운동은 전열을 정비했다. 이달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 각의 결정은 발걸음을 뜀박질로 바꿨다. 국민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애국심과 민족주의가 눈을 부릅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불매운동의 정당성은 더없이 커졌고 배척하는 감정도 스스럼없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평이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국내에서는 ‘정교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원산지를 바코드로 확인해 일본제품을 확실히 차단한다는 전략이다. 인터넷 기기와 SNS에 익숙한 누리꾼들은 ‘#안사요’, ‘#안가요’ 해시태그를 달았다. 불매운동을 ‘게임’처럼 즐기는 모습이다. 세대·연령을 불문하고 확산된 것도 특이점이다. 일본 과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초등학생들의 ‘결기’도 눈에 띈다. 뭔가 께름칙하지만 아이까지 나선다는 점에서 세대를 초월한 운동임은 분명하다.
이처럼 불매운동은 ‘지속성, 전문성, 확장성’을 무기로 국민을 한데 묶고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조치에 개인의 창의성과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결연히 대응함으로써 정책의 부당성을 꼬집고 있다. 아베 정부에 대한 확실한 ‘망신주기’인 셈이다.
하지만 또 다른 얼굴도 숨어 있다. 일본차에 주유를 거부하고, 수리를 유보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애국자와 친일파, 불매운동 참여자와 비참여자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한쪽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야수의 얼굴이다. 한마디로 폭력이다.
‘사지도, 먹지도, 가지도’ 말자는 결기에 어느 순간 배타적 민족주의의 감정이 싹텄다. 배척하는 감정은 강력한 내부결속을 만들지만, 경계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을 낙인찍고 차별한다. 국민과 정치인, 행정가가 따로 없다. 정치권의 ‘사케 공방’을 떠올려 보라. 도심에 지자체가 내건 ‘NO재팬’ 깃발을 상기해 보자. 무섭게 타오른 정의감이 차별이라는 폭음을 만들어 낸 순간이다. 인권의 가치는 조각나고 애국주의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순간이 왔다. 일본차에 협박의 낙서가 달리고, 달걀이 던져진 상황은 말 그대로 ‘테러’다. 총기를 난사하는 것만이 테러가 아니다. 증오범죄의 망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움직여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촉구하는 야수와 결연히 맞서도록 등 떠밀어야 한다. 새로운 불매운동을 상상해야 한다. 편의상 ‘스마트한 불매운동’으로 불러보자.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해 본다. 첫째는 자발성의 원칙이다. 자유로운 개인과 국민이 자발적으로 주도할 때 운동의 순수성과 정당성이 보장된다. 관이 나서는 순간 자발성은 사라지고 정당성은 훼손된다. 둘째 포용성의 원칙이다.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국민의 권리가 고귀한 것처럼 참여하지 않는 국민의 자유도 소중하다. 셋째 연대의 원칙이다. ‘# 싫어요_한국’ 해시태그를 다는 일본인도 있지만, ‘#좋아요_한국’을 다는 일본인도 있다. 도쿄올림픽은 배척의 순간이 아니라 연대의 기회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별의 원칙이다. 아베 정부와 극우세력에 화살을 겨누되 국내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것은 불매운동 참여자 그 누구도 원하는 것이 아닐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