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이력을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이 가열되면서 ‘사노맹 사건’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사노맹은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한 반국가 조직”이라며 이적단체에 가입해 국가전복을 꾀하는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냐고 자격론에 불을 지폈다. 조 후보자는 “28년 전 그 활동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며 “국민의 대표 앞에서 소상히 밝히겠다”고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박노해·백태웅씨 등 사노맹 핵심 간부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과연 사노맹은 어떤 단체였고 지금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짚어봤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노맹 사건이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사노맹의 목표를 ‘사회주의 폭력혁명’으로 보고 조직원들을 잇따라 체포·구속한 사건이다. 사노맹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1989년 11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와 박노해 시인 등이 중심이 돼 출범한 조직이다. 1991년 4월 박노해 시인이 검거되고 1992년 교수 등 40명 가까운 인물이 잇달아 구속되면서 해체됐다. 당시 안기부는 사노맹이 전국의 노조 50여개와 대학 40여곳에서 조직원 1,230여명을 뒀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총인원은 300명에 이른다.
황 대표가 주장한 사노맹의 폭발물 제조나 무기탈취 계획 등은 당시 안기부 발표 내용이다. 하지만 법원 판결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 후보자의 경우 사노맹에 가입해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노맹 산하 조직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 강령연구실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1993년 수사를 받고 6개월간 구속 수감됐다. 당시 조 후보자는 28세로 울산대 법대 전임강사였다. 그 이후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조 후보자 판결을 확정하면서 “반국가단체인 사노맹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사과원에 가입하고 사노맹이 건설하고자 하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의 성격과 임무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촉구하는 내용이 수록된 ‘우리사상’ 제2호를 제작·판매했다”고 명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과원에 대해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을 도운 ‘이적단체’로 분류했다. 야당이 이적단체라고 지적하는 근거다.
특히 재판부는 당시 조 후보자가 사과원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사과원) 운영위원과 강령연구실장직을 맡기는 했으나 대학강의, 기타 연구 활동 때문에 실질적으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거나 사회주의 정당 강령 작성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고 판시했다. 주목한 점은 조 후보자가 재판 과정에서 반성한 점도 확인된다. 재판부는 “비합법적인 비밀·전위조직 활동이나 폭력적 혁명 방법에 의한 사회개혁은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점, 초범이고 과거 사과원 활동을 후회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여당 측에서도 조 후보자에 대해 국제엠네스티가 1994년 ‘올해의 양심수’에 선정한 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사노맹 핵심 간부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점을 들어 야당의 공세에 맞설 것을 예고했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은 행정부 내에서 국법질서와 법치주의를 책임지는 사람인데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은 전력은 논란의 소지를 피해가기 어렵다”면서도 “인사청문회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 국가보안법은 옳은지 그른지, 반국가단체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조 후보자가 견해가 밝히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특별사면·복권 조치 됐고, 이명박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