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일렉트릭(GE)의 대규모 회계부정을 주장한 해리 마코폴로스는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폰지(금융 다단계) 사기를 금융당국에 제보했던 인물이다. 당시 당국은 마코폴로스의 말을 무시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폰지 사기의 범인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약 10%의 수익을 약속한 뒤 다음 투자자에게서 돈을 받아 돌려막는 수법으로 500억달러를 가로챘다가 수법이 들통 나 2008년 12월 체포됐다. 미 주요 언론이 이번 마코폴로스의 주장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코폴로스가 15일(현지시간)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GE의 분식회계에 관한 175쪽짜리 보고서는 가히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GE가 2001년 분식회계로 파산한 에너지 기업 엔론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에서 GE를 ‘젠론(GEnron·GE+Enron)’으로 명명하며 “GE가 파산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보고서는 GE의 회계부정 규모를 381억달러로 추산했다. 당시 15억달러였던 엔론 분식회계 규모의 25배가 넘는다.
구체적으로는 △고령화에 따라 보험사업 분야에서 필요한 현금 준비금 185억달러 누락 △2021년 1·4분기까지 추가 반영이 필요한 105억달러 누락 △베이커 휴(GE 석유가스 부문) 인수 관련 손실 91억달러 미반영 등이다. 보험사업은 푸르덴셜 같은 경쟁사와 비교한 결과이며 베이커 휴의 경우 지난해까지 손실을 반영해야 했지만 아직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는 게 마코폴로스의 주장이다.
보고서에서는 GE의 부채비율과 유동성도 문제 삼았다. 마코폴로스는 자신이 밝혀낸 것을 장부에 반영하면 GE의 부채비율은 30%가 아닌 170%로 치솟게 되며 이 경우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보고서는 지난해 GE의 영업손실이 228억달러인데 GE의 사업 분야 중 영업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전력(-3%)뿐이라며 전력 1개 분야에서 228억달러의 영업손실을 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GE 측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 부문별 영업마진은 항공 21.2%, 헬스케어 18.7%, 석유·가스 4.6%, 전기 4.1% 등이다.
특히 그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GE의 매출 가중 평균 이익마진율이 14.7%로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다단계 사기를 벌였던 메이도프의 수익률(12%)보다 높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미 경제방송 CNBC는 “마코폴로스는 잭 웰치가 GE를 운영하던 1995년부터 회계부정의 역사를 가졌다고 본다”고 전했다.
GE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GE는 이날 “마코폴로스와 얘기하거나 접촉한 사실도 없고 보고서를 보지도 않았으며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가 들은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밝혔다. 이어 “GE는 위법행위에 관한 주장을 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번 경우는 시장 조작”이라며 “그가 보고서를 공개하기 전에 우리와 함께 검증했다면 그런 주장은 수정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GE는 CNBC에 △보험 분야 적립금은 적정하며 매년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고 △베이커 휴 재무상황은 연결재무제표로 반영했으며 △대규모의 유동성 및 크레디트라인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담긴 해명자료를 보내기도 했다.
양측 간 진실공방과 별개로 이번 사건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사이트에 보고서를 공개한 마코폴로스는 이를 관계당국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E는 이미 지난 2년 동안 보험 등과 관련한 잠재적 회계 문제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며 “마코폴로스 측은 이 보고서를 SEC에 제출하고 연방검사와 수사관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미 정부가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마코폴로스와 헤지펀드의 협력도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WSJ는 “마코폴로스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헤지펀드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헤지펀드는 GE의 주가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며 “마코폴로스 그룹은 투자자들에게 이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에 볼 수 있는 권한을 줬고 거래 수익의 일부를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래리 컬프 GE 최고경영자(CEO)는 “마코폴로스는 정확한 분석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GE 주가를 급락시켜 자신과 헤지펀드가 이익을 얻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고 비난했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GE 주가는 장중 15% 폭락했다가 11.30% 하락으로 마감했다. 이는 2008년 4월 이후 약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