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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광화문 현판

  • 홍병문 논설위원
  • 2019-08-18 18:13:04
  • 사내칼럼
[만파식적]광화문 현판
복원 예정 광화문 현판. 문화재청 제공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고 새 궁궐을 짓는 일이었다. 이성계는 개국공신인 정도전에게 법궁(임금이 거처하는 궁)이 될 경복궁 건설 책임을 맡겼다. 경복궁 안의 모든 건물과 문의 이름을 짓는 일도 정도전의 몫이었다. 정도전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남문을 사방에서 어진 사람이 오가는 정문이라는 뜻의 사정문(四正門)으로 이름 붙였다.

경복궁 사정문이 지금의 광화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종 때다. 경복궁 수리가 이뤄진 이후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렸다. 서경의 글귀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왔다. 온 나라에 가득한 임금의 공덕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겠다는 뜻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없어지자 고종이 재건하면서 복원됐다.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는 당시 재건 공사를 지휘했던 임태영 훈련대장이 썼다고 한다. 이전까지 광화문 현판은 누가 썼는지, 어떤 색깔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1865년 고종 때 복원된 현판의 모습은 경복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에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를 뜻하는 ‘묵질금자(墨質金字)’라는 표현과 ‘동으로 만들었다(以片銅爲畵)’는 기록이 나온다.

힘겹게 중건된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또다시 수난을 당한다. 1927년 총독부 건물에 밀려 경복궁 동쪽으로 밀려났고 6·25전쟁 때는 목조 건물 대부분이 불타고 골격만 남는 비극을 겪는다.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8년 복원되면서 광화문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현판이 내걸리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문화재청은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며 현판을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교체했지만 몇 달 만에 균열되면서 재복원이 결정됐다.

14일 문화재위원회는 10여년 가까이 논란이 됐던 광화문 현판의 재복원 방식을 고종 당시 기록인 ‘경복궁 영건일기’에 따라 검은 바탕에 황금빛 동판 글씨로 결정했다. 그동안 광화문 현판 복원 과정에는 정치적 입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 건물의 복원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과감하게 수정하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하지만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번 재복원 결정으로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잡음이 말끔히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홍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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