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청각장애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이덕희(21·서울시청)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단식 본선 첫 승이라는 달콤한 결실을 봤다. 청각장애 선수가 ATP 투어 단식 본선에서 승리한 것은 이덕희가 사상 최초다. 1895년부터 1908년 사이 샬럿 쿠퍼(영국)라는 청각장애 선수가 윔블던 여자단식에서 다섯 차례 우승한 기록이 있지만 당시는 출전선수가 1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체계가 잡히기 전이었다.
세계랭킹 212위의 이덕희는 19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120위·스위스)을 2대0(7대6 6대1)으로 이기고 32강에 올랐다. 2회전 상대는 세계 41위의 후베르트 후르카치(폴란드)다. ATP 투어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통해 이덕희의 역사적인 첫 승 소식을 알렸다.
청각장애 3급의 이덕희는 16세1개월에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 정현의 국내 최연소 우승 기록을 경신하며 주목받았다. 2016년 국내 최연소(18세2개월)로 세계 200위 벽을 깼고 2017년에는 세계 130위까지 올랐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단식 동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현재 랭킹은 권순우, 정현에 이어 국내 3위다.
비장애선수들과 당당히 맞서는 이덕희의 모습에 세계적인 스타들도 관심을 보이며 격려해왔다.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 등이 그동안 메이저대회에 이덕희를 훈련 파트너로 초청했다. 앞서 2013년 성인 랭킹포인트를 처음 따내자 나달은 개인 소셜미디어에 “이덕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고 적기도 했다.
ATP 투어 대회보다 한 등급 아래인 챌린저 대회에서 주로 뛰며 2016년 대만 가오슝 대회에서 준우승한 이덕희는 지난 6월 미국 아칸소주 대회 준우승으로 슬럼프를 탈출한 뒤 생애 첫 투어 대회 단식 본선 무대에서 생애 첫 승을 따냈다. 라크소넨은 2017년 세계 93위까지 올랐던 선수인데 이덕희는 그런 라크소넨을 서브 에이스 9개로 몰아세웠다. 2세트 게임 스코어 5대1 상황에서 비로 5시간 가까이 경기가 중단되는 변수도 있었지만 이덕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경기 후 ATP 투어와 인터뷰에서 이덕희는 “일부는 저의 장애를 비웃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공이 코트,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