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 등 금융업권 간 겸직 등을 금지하는 이른바 ‘파이어월(Firewall)’ 규제가 한국의 동북아 금융허브 도약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금융사들이 금융지주 체제를 통해 업권 간 칸막이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외국계 금융사들은 규제의 벽에 막혀 비효율적인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2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법무법인 김앤장 주최로 열린 ‘정보교류와 겸직 규제(Firewall regulation) 및 아웃소싱 규제의 개혁’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이원준 크레디아그리꼴 서울지점 부대표는 “해외 본사에서는 겸업주의 원칙으로 원래 한몸인 외국계 금융기관이 한국에서는 전업주의 원칙에 따라 은행·증권 등으로 나뉘어 운용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업권 간 정보교류나 겸직을 막는 파이어월 규제는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돋움시키는 데 실질적인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이 은행·증권 등을 유니버설뱅킹 체제로 운영하도록 하는 겸업주의를 채택한 것과 달리 한국은 미국·일본 제도에 따라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등을 따로 두도록 하는 전업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이 같은 ‘칸막이’ 규제에 따른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파이어월 규제를 완화한 것과 달리 한국의 경우 규제 벽이 여전히 높아 외국계 금융기관의 경우 계열사 간 정보공유나 겸직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국내 진출해 있는 독일계 도이체방크에 예금을 가입한 고객 정보를 도이체증권에서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대표는 “국내 금융회사는 금융지주를 활용해 계열사 간 겸직 및 정보교류를 실제 수행하고 있지만 외국계 금융기관은 이 같은 방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지역총괄책임자(Country Head) 제도를 통해 겸직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국내 금융 당국이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핀테크 발달로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업권 내 칸막이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대표는 “복합적인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핀테크 혁신 등으로 전통적인 금융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기존의 파이어월 규제방식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