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이사람]"게임은 IT 융합 예술인데, 우린 여전히 저급 낙인…'문화의 미래'로 보세요"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을 게임하다’ 전시장에서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된 돋보기를 한 손에 들고 온라인게임 속 모습을 현실 속에 구현한 전시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오승현기자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을 게임하다’ 전시장에서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된 돋보기를 한 손에 들고 온라인게임 속 모습을 현실 속에 구현한 전시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인상주의·야수파·추상화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태동 배경에는 카메라의 탄생이 있었다. 순수회화의 정확한 묘사능력을 광학기술에 침해당한 미술가들은 도피하듯 객관과 사물의 세계를 벗어나 관념·추상의 세계를 개척하며 현대예술 장르를 구축했다. 하지만 약 1세기 만에 인간의 창의성은 또다시 과학기술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초고속으로 방대한 예술작품을 학습해 고전미술뿐 아니라 세잔·피카소·칸딘스키 같은 현대미술 대가들의 화풍을 순식간에 흉내 내고, 심지어 패턴을 응용해 재해석한 새로운 그림을 ‘출력’하기에 이르렀다. 기술 앞에 고유의 독창성이 잠식되면서 인간은 정체성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데 게임 분야의 정보기술(IT) 기업 넥슨이 나섰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의 주도로 최근 게임 기술·콘텐츠와 설치미술 등을 융합한 전시회를 열어 기술과 인간, 사회의 소통,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23일 최 관장은 해당 전시회인 ‘게임을 게임하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제는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양측 간 교류를 통해 서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런 차원에서 보면 게임에도 미술과 음악 등 예술적 측면이 많다. 여기에 코딩과 같은 IT가 기본으로 깔려 융합돼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문화 장르냐”며 “대중과 예술계가 이런 차원에서도 게임을 이해하고 평가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을 게임하다’ 전시장에서 온라인게임 속 모습을 현실 속에 구현한 전시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뒷면의 배경은 온라인게임의 채팅에서 사용되는 비속어 등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해당 문자들을 우주공간의 작은 별처럼 스크린에 투영한 작품이다. /오승현기자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을 게임하다’ 전시장에서 온라인게임 속 모습을 현실 속에 구현한 전시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뒷면의 배경은 온라인게임의 채팅에서 사용되는 비속어 등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해당 문자들을 우주공간의 작은 별처럼 스크린에 투영한 작품이다. /오승현기자


미술·음악·스토리에 IT 접목, 문화적 수준 높아지지만

한국선 ‘질 낮은 콘텐츠’ 편견 팽배…개발자 자존감 잃어

인재들은 갈수록 기피…게임산업 동남아에도 추월당할 것



실제로 넥슨을 비롯한 국내외 게임사들이 근래에 출시한 게임들에는 정교한 고전·근대회화를 보는 듯한 풍경이나 현대적 디자인의 캐릭터는 물론 웅장한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배경음악, 대중소설이나 영화 못지않은 이야기 전개(플롯) 구조들이 갖춰져 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이 접목되는가 하면 게임 이용자 간 쌍방향 소통 요소가 강화돼 미디어아트적 요소까지 가미되고 있다. 게임 콘텐츠 자체를 종합예술로 정의하기에는 아직 학술적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완성도 있는 문화 콘텐츠로 진화했다는 게 최 관장의 평가다.


문제는 게임 콘텐츠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와 대중은 여전히 과거의 잣대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 게임을 즐기고 있으면서도 게임은 저급한 콘텐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최 관장은 “예술가가 게임 요소를 작품에 도입하면 신선한 예술행위로 평가받지만 게임 개발자가 예술을 담으면 제대로 된 예술적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현실을 되짚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게임 제작자들은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를 내놓으며 국위선양했지만 주변의 편견 속에 자긍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 관장은 “게임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과 만날 때 그분들이 ‘저는 게임이나 그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의기소침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까웠다”며 “그럴 때면 ‘어깨 펴시라. 훌륭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계신다’고 응원하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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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회적 낙인효과는 게임 산업계로의 우수 인재 유입을 저해하고 있다. 최 관장은 “국내에서 대형 게임 회사는 여전히 입사경쟁률이 높은 인기 직장이지만 지원율은 높은 반면 과거에 비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좋은 인재가 덜 오기 시작한 지는 한참 됐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마음속으로는 유망 게임 기업을 직장으로는 좋게 생각하지만 정작 취업할 때는 ‘이름 있는 대기업을 가라’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대기업에 지원하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성세대의 편견이 게임 산업의 미래 꿈나무 육성을 가로막고 있음을 되짚었다. 그는 “좋은 인재들의 지원 기피현상이 계속되면 우리 게임 산업이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권에서마저 추월당할 수 있다”며 “좋은 인재가 유입돼야 산업이 발전하고 또다시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제주 넥슨컴퓨터博 기술·예술 융합 전시·워크숍 등

지역 사회공헌으로 대중 이해도 넓히는 교육활동 앞장



최 관장은 그런 차원에서 과학기술과 인문예술 분야 간 융합의 중요성에 대해 대중의 이해를 넓히는 교육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도 융합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소재지인 제주도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최 관장은 “제주도 면적은 서울의 약 세 배지만 인구가 적다 보니 교육·문화시설이 많지 않았다”며 “그래서 저희 박물관에서 예술과 인문학·IT를 융합한 워크숍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현재 제주도에서는 저희 박물관이 지역민들이 컴퓨터 같은 IT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기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최 관장은 “교육 프로그램은 저희가 일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지역민들의 의견을 듣고 제주에서 어떤 게 필요한지 파악해 이를 반영한 것”이라며 “유치원 연령대의 아이들에게는 넷티켓(인터넷 예절)을 가르치기도 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코딩교육 등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물관을 개관한 지 벌써 6주년이 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어린이가 고등학생이 돼 저희 교육봉사활동에 자원봉사자로 동참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같이 경로당을 방문해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는 것을 보면서 이제 저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지역민과 함께하는 선순환 구조로 정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관장은 “기술이 발전해 (정보나 콘텐츠를 담는) 매체가 새롭게 나오면 우리의 삶도 그에 따라 변화돼왔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한 차례의 전시로 끝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시와 교육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She is

△1968년 서울 △1991년 이화여대 교육공학 △2004년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 석사 △2008년 서울대 대학원 미술교육 박사 수료 △2004년 인투뮤지엄 대표 △2013년 한국미술교육학회 이사, 제주대 컴퓨터교육과 겸임교수 △NXCL 대표 겸 넥슨컴퓨터박물관 관장 △ △2016년 제주특별자치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위원회 위원 △2018년 제주도립미술관 운영위원 △2018년 국립과천과학관 자문위원 △2019년 한국과학창의재단 정책자문위원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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