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파는 행위는 미중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히 위반한 것입니다.”
최근 겅솽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만에 최신예 F-16V 전투기를 팔기로 한 미국을 비난하며 주장한 내용이다. 중국은 대만이나 홍콩·신장위구르·티베트 등 주변 지역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들먹이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중국 측 논리로 풀면 ‘중국이 현재는 여러 나라로 분단돼 있지만 이는 결국 하나로 통일돼야 하고 그 주체는 베이징에 정부를 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말이 된다.
미중이 합의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우선 지난 1972년 미합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 외교관계를 재개하며 공동발표된 ‘상하이 코뮈니케’를 의미한다. 두 나라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통해 코뮈니케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적대관계 청산과 교류 시작을 선언했다.
오랜만에 상하이 코뮈니케를 다시 읽어봤다. 대만 관련 조항에 적시된 다른 의견이 눈에 띈다. 각각 ‘중국은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한다’와 ‘미국은 밝혔다’ 등으로 표현돼 있다. 중국 측 주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대만은 중국의 1개 성이다. 대만을 해방하는 것은 중국의 내정이고 다른 나라가 간섭할 권리는 없다”로 돼 있다. 반면 미국 측 항목에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모든 중국인이 중국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을 미국은 인식한다. 대만 문제가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미국은 재확인한다”고 서술돼 있다.
합의점을 찾다가 실패하고 양측의 주장 모두를 나열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china)’이라고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하지 않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의 중국’에 미국도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인 셈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미국 인사들은 현상유지를 원하는 상하이 코뮈니케의 시각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나의 중국’ 논란에서 또 하나 중요한 문서는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정식명칭은 중화민국) 정부가 합의한 ‘92공동인식’이다. 92공동인식은 “양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個中國) 그 표현은 각자 편의대로 한다(各自表術)”는 내용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에 대만도 동의했으며 이에 따라 대만도 중국 영토라는 주장의 근거로 92공동인식을 언급한다. 하지만 대만은 여기서 ‘중국’을 중화민국이라고 본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중국’에서 ‘중국’은 그 개념부터 모호하다. 19세기 제국의 시대가 무너지고 서양에서는 각기 민족국가로 독립했지만 중국은 예외적으로 제국이 그대로 남아 20세기로 돌입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현재의 판도는 17세기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무력으로서 점령한 각 영토를 이어받은 것이다.
중국은 현재 중국 판도에 있는 한족을 포함한 56개 민족이 모두 중화민족이라면서 이를 ‘하나의 중국’의 기본 조건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족이 아닌 다른 55개 민족에게 중국이 행사하는 주권의 적법성을 물어본 적은 없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요한 내선일체의 쓰라린 기억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분통해한다.
중국과의 통일에 찬성하는 대만인에게도 전제조건은 있다. 현재 대만과 같은 수준의 중국의 민주화다. 수개월째 민주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홍콩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된 중국이었다면 홍콩이나 대만에 ‘일국양제(한 국가 두 제도)’를 시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이 버려야 할 편견을 네 가지 우상으로 정리했고 첫째를 ‘종족의 우상’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척도로 생각함으로써 사물들이 굴절돼 인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나 ‘중국몽’ 등 중국이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것을 비난할 외부인은 없다. 힘이 생겼다고 자신의 논리를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반발만을 부를 뿐이다. 중국이 세계를 이끌 자격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우상이 바로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가 아닐까 한다.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