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어게인 1960

김윤식 신협중앙회장




‘다시’ ‘한 번 더’를 뜻하는 ‘어게인(again)’은 도전·응전을 넘어 희망까지 품은 단어다. 예컨대 ‘다시 도전’ ‘한 번 더 도전’은 재도전을 가리키는 말로 희망의 랩소디를 쉬이 연상케 한다. 신협은 ‘8·15 해방대출’ 상품 출시를 기해 ‘어게인 1960’을 외치고 있다. 출시 열흘 만인 지난 25일 누적 대출 취급액 200억원을 돌파했다.

신협은 1960년에 탄생했다. 내년이면 60돌을 맞는 한국 신협의 위상은 가히 특기할 만하다. 지난 59년 동안 신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서민금융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 117개국 중 미국·캐나다·호주에 이어 자산규모가 4위, 아시아 23개 회원국 중에서는 단연 1위다. 하지만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다.

1960년 초반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최악이었다. 36년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됐지만 곧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나라가 온 데 폐허로 변했다. 참상도 이런 참상이 없었다.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반도는 38선으로 허리가 잘려나갔다. 전쟁의 상흔은 전 국토에 전염병처럼 퍼져 있었다. 가족을 잃고 전 재산을 잃은 서민이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농가부채가 농업생산액의 6분의1에 달할 정도였으니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실업률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1960년 실업률은 자그마치 34.2%였다. 실업자는 240만명이 넘었다. 도시나 농촌이나 아우성판이었다. 극난과 간난은 이기심을 추동했다. 저마다 제 배 불리기에 혈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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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는 사람은 사채놀이를 했다. 가난한 사람은 사채 때문에 더 가난해졌고 사채를 놓은 사람은 서민의 고혈로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해갔다. 모두가 살기 위한 길이었으되 누구는 시궁창으로 처박히고 누구는 등 따뜻하고 배부른 시절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구호단체와 선교사들이 구호와 구제를 외치며 이 땅에 들어왔다.

그 이방인들 사이에 한국 신협의 창시자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있었다. 그녀는 자조·자립·협동을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우리 서민들에게 희망을 노래했다. 몸소 희망을 쓰는 법을 보여줬다. 그 척박한 환경 속에 1960년 성가신협을 설립했고 불과 4년 만에 신협 운동이 요원의 들불처럼 전국을 뒤덮었다.

조합원들 손에는 난생처음 희망 통장이 쥐어졌다. 1원, 2원씩 저축하며 내일을 기다리고 희망찬 미래를 설계했다. 사채를 끊고 서민이 서민을 돕는 인간애를 스스로 실천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이때 신협 100년을 내다보며 법안을 제정하고 기반을 다졌다.

8·15 해방대출의 누적 대출 취급액 200억원은 59년 전 가브리엘라 정신, 그 어게인이다. 신협은 늘 서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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