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경영 힘든데 정치리스크까지...애써 뚫은 日판로 다 막힐판"

<지소미아 종료 이후 근심 더 커지는 中企 현장>

日특화 제품개발 공들였는데

바이어 눈치봐야할 상황으로

당장 내년 수출조차 가늠못해




인천에서 화학소재업체를 운영하는 정인호(가명) 대표는 지난 23일 급히 일본으로 건너가 자사 원료를 유통하겠다는 일본인 바이어를 만났다. 몇 달 전 유통을 먼저 제안해 와 계약이 무난하게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 대표는 바이어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국이 왜 그런 건가. 북한과 손을 잡고 일본을 위협하겠다는 건가”라고 물었던 것. 일본에 머물고 있는 정 대표는 27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일부 일본 매체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가 한국이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위협하겠다는 의미라는 황당한 해석까지 내놓는다”며 “이번 사태로 바이어에게 우리 정부의 판단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일본 수출규제를 들여다보면 수출 심사를 엄격하게 한다는 의미였지, 수출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일본과의 거래에서 이 정도 상식은 어느 정도 통하던 상황에서 예상과 달리 지소미아가 종료되자 한일 양국 경제인 모두가 당황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지소미아 종료로 한일 경제갈등이 심각해질 국면을 맞자 중소기업계에서는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으로 경영도 힘든데, 이제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가운데 내년도 근로시간 단축, 대기업 실적 악화 우려에다 한·일 경제갈등, 미·중 무역분쟁까지 경영 암초가 곳곳에 지뢰처럼 자리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용 도기업체를 운영하는 박병철(가명) 대표는 “건설경기 악화에 근로시간 단축 정책까지 겹치면서 수입은 줄고 비용은 늘어나고 있는 게 우리 실정”이라며 “한 곳이라도 매출처를 뚫어도 모자랄 판에 정부에서 대일외교까지 강경하게 추진하면서 당장 내년조차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식음료업체를 운영하는 김보석(가명) 대표는 “그 동안 일본과의 관계가 좋아 일본에 특화된 제품 개발에 1년 넘게 공을 들였는데 이런 상황이면 일본 사업은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수출국 하나를 늘리는 데 적어도 1년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사드나 지소미아처럼 정치적 이유로 대외 리스크까지 커지면 수출을 엄두도 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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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앞서 269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기업 10곳 중 6곳(59%)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버틸 수 있는 기간을 ‘6개월 미만’으로 꼽았다. 문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46.8%에 이른다는 점이다. 소재 거래처 다변화에 1년 이상 소요된다는 곳이 42%에 달해 일본을 대체할 판로를 개척하기도 쉽지 않다.

중소기업계의 이런 우려에 대해 그동안 정부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말라는 메시지로 안심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소미아 종료로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 한·일 경제갈등이 심각한 국면으로 만든 것 아니냐는 불만이 기업인 사이에서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중기중앙회의 같은 조사에서 응답 기업 53.9%가 ‘외교적 협상을 통한 원만한 해결’을 원했던 것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더욱 고민스러운 지점은 현재로선 기업은커녕 정부조차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려운 외부 환경이다. 중국과 미국은 보복 관세 전쟁을 격화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수출은 적신호가 켜졌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 감소한 267억 달러를 기록했다. 1·4분기(-3.5%), 2·4분기(-2%) 실적이 연속으로 악화한 데 따른 결과다. 국가별로 보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수출이 2·4분기에 3%나 줄었다. /양종곤·심우일기자 ggm11@sedaily.com

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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