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트라우마가 폭발하기 전에 나를 지키는 방법

작가

주의력·감수성 모으는 마음챙김은

내안의 분노·증오 누그러뜨리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단 믿음 줘

'시간 버는 말'은 경솔한 행동 막아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나도 모르는 내 행동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디서 생겼는지 기억할 수 없는 상처들이 무릎이나 손가락에서 종종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 ‘전에 네가 이런 말 했잖아’라고 이야기할 때 내가 말했다는 내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멀쩡한 상태에서도’ 기억나지 않는 상처와 기억나지 않는 말들을 달고 산다.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마음놓침(mindlessness)’이다. 마음놓침이 발생하는 이유는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과도한 방어기제 탓이기도 하다. 깨어있어도 깨어있는 것이 아닌 상태, 몸은 여기 있지만 정신은 딴 곳에 있는 상태다. 마음놓침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온전한 주의력을 회복하는 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마음챙김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잘 아는 척’ 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았음을.

마음챙김 상태가 되면 마음놓침일 때의 실수와 허점을 뒤늦게 발견하고 뼈아픈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때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됐는데. 마음챙김의 관점에서 보면 뒤늦은 사과란 없다. 언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타인에게 사과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과거의 상처와 실수로부터 도망친다면 그 아픔은 점점 더 무의식 속에서 강력한 괴물로 변신해 언젠가는 더 큰 트라우마로 폭발하게 된다. 마음챙김을 통해 과거의 실수를 되돌아보고 그때 내가 분노 때문에 누군가를 괴롭혔다는 것을, 질투심으로 누군가를 미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매일 더 행복한 삶의 가능성에 참여하게 된다. ‘내 마음의 상태를 온전히 알아차린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마음챙김은 실수와 폭력의 가능성을 줄여준다. 증오와 분노도 누그러뜨린다. 내 마음과 몸이 지금 이 자리에 정확히 있도록 주의력과 감수성을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 모아주는 것이 마음챙김이고, 그것이 잠재력과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마음챙김의 과정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느낄 때는 ‘그때 내가 얼마나 유치한 행동을 했는지’ 깨달을 때다. 심리학자 마크 엡스타인은 ‘트라우마 사용설명서’에서 자기 안의 유치함이 폭발해 버린 결정적인 계기로 아빠가 된 순간을 뽑았다. 그는 오래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다가, 아내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아기를 질투하는 자신, 아기를 너무도 능숙하고 우아하게 보살피는 아내를 질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깨닫는다. 내가 저렇게 유치하고, 질투심 가득하고, 형편없는 아빠였다니. 그러나 그는 다행히도 이제는 자신의 유치함과 질투를 ‘인정’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가졌다. 마음챙김의 효과는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기가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아내가 자신보다 더 성숙한 인격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유치한 행동, 즉 ‘퇴행’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에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다.


자기 안의 콤플렉스를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행동은 타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나의 분노나 상처가 타인을 공격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챙김의 언어는 ‘시간을 버는 말들’이다. 내 안의 분노나 상처 때문에 경솔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시간을 벌면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의 행로가 투명하게 보인다. 하루면 분노가 사그라들고, 이틀이면 자신의 과오가 보이고, 사흘이면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돌발사고를 일으키기 전에, 내 마음의 문앞을 든든히 지키며 내 상처의 속삭임을 들어야 한다. 우리의 과거가 현재를 뒤쫓으며 괴롭힐 수는 있지만, 그 과거가 미래마저 아픔으로 물들이지 못하도록. 치유 안된 상처는 미래로 가는 통로 한가운데 매복해 언젠가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기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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