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생활 속에서 누리는 천문학 기술들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

단층 촬영·대기오염 측정기기 등

천문학으로부터 시작된 기술 많아

첨단기술 수요처인 동시에 생산役

기초과학 연구 병행해야 할 이유

이형목 천문연구원장이형목 천문연구원장



요즘 일본이 한국에 대한 부품·소재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적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많다. 돌이켜 보면, 짧은 시간에 이만큼 나라가 발전했으니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는 정신없이 빨리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다면 자칫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도 후진국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것이 많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마 이러한 전제만 바꿔도 과학연구가 훨씬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도 아직도 기술자립을 못했다는 질책이 많고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연구개발(M&A)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반면 일본은 우리에 비해 훨씬 오랫동안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투자해왔다. 최근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매년 투자하는 연구비는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은 지금까지 투자한 누적 연구비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연구가 고비용 저효율이란 표현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들을 아주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행동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 뻔한데도 안보 문제로 핑계를 댄 것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전략물자 제한과 같다는 점을 강변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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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은 국가 간 장벽이 가장 희박한 학문이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다. 연구 대상이 지구가 아닌 먼 천체이며 따라서 사회경제적 영향도 매우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문학 연구를 위해서는 아주 미약한 빛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검출 대상이 우주로부터 오는 소립자나 중력파로 확장되고 있어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야 경쟁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비에는 군사비밀로 분류된 종류의 소자나 검출기들이 포함돼 있고 미국을 비롯한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생산되며, 그 나라로부터 특별허가를 받아 구입해야 한다. 우리는 그나마 미국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라 큰 어려움이 없이 이들을 조달할 수 있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좋은 관측을 위해서는 현존하는 기술만으로 부족해 직접 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천문학은 첨단기술의 수요자이면서 생산자이기도 하다.

올해는 국제천문연맹이라는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모임이 만들어진 지 100주년 되는 해로서, 대중에 대한 홍보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최근 ‘생활 속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천문학 기술들’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 소개된 천문학으로부터 시작된 기술에는 몸 내부의 질병 파악을 위해 사용하는 단층촬영 기법, 빅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연구방식 도입과 시민참여형 과학, 자동항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확한 절대시간의 정의, 천문사진 촬영용으로 개발됐다가 디지털카메라에 적용되고 있는 전하결합소자(CCD) 센서, 블랙홀로부터 오는 전파분석 기법을 바탕으로 한 와이파이 기술, 행성 대기를 연구하기 위해 개발한 대기오염측정기기 등이 포함됐다. 한국천문연구원도 천문관측기기 개발을 통해 파생돼 전자동 검안기, 인체친화형 인공 뼈, 대기환경 모니터링, 대륙이동 정밀측정, 위상배열 망원경, 광대역 자유공간 광통신, 고효율 태양열 발전 등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예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이 창출되는 것이다. 당장 급한 기술을 찾아내 빨리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중요 기술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연구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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