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주객전도된 근로장려금

<김정곤 논설위원>

올해 3배이상 늘어 5조300억

사실상 최저임금 1만원 효과

소득보전 수단으로 성격 변질

종교인 지원대상 포함 논란도

김정곤 논설위원





정부가 올해 5조300억원 규모의 근로·자녀 장려금을 지급한다.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지급액의 3배 이상인 3조2,000억원가량 늘었다. 근로장려금이 388만가구에 4조3,003억원, 자녀장려금이 85만 가구에 7,273억원이다. 근로복지 강화를 위해 근로장려금의 단독가구 연령조건을 폐지하고 소득·재산 요건을 크게 완화하면서 지급 규모가 크게 늘었다.

근로장려금은 근로연계형 지원금이다. 소득이 낮아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와 종교인·사업자(전문직 제외) 등에게 지급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의 하나로 ‘근로를 통한 빈곤 탈출 유도’를 내세우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는 ‘선(先) 고용지원, 후(後) 복지제도’라는 정책 기조로 이어졌다.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자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장려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제도”라며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진통 끝에 관련 법안이 통과됐고 1년 유예를 거쳐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부터 시행됐다.


근로장려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최소생활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과 비슷하지만 근로소득·가구구성·자산규모·총소득 등에 따라 차등지급된다는 점이 다르다. 저소득 근로자가 국세청에 신청하면 세금환급 형태로 지급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도 큰 이견이 없었다. 무작정 현금을 퍼주기보다 일하는 저소득 가계의 소득 보완으로 근로를 장려한다는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 근로자들의 반응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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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원대상 요건 완화로 규모가 1조원대에서 5조원대로 급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근로 장려보다는 소득보전을 위한 현금지원 성격이 강해졌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근로장려금 확대분을 고려하면 사실상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에 따른 보완책으로 근로장려금을 확대했다. 지급 규모가 한꺼번에 크게 늘면서 국세감면율이 법정한도를 초과하는 등 조세 수입과 정부 재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근로 의욕을 높인다는 정책효과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지원대상이 대폭 확대되면서 소득재분배에 방점이 찍혔고 저소득층의 근로유인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근로장려금 수혜 규모도 정작 지원이 집중돼야 할 저소득층보다 중상위 소득계층에서 더 많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근로장려세제 효과성 제고방안’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저임금 근로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장려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소득구간 범위를 축소하는 등 저소득층 위주로 수혜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종교인 과세가 처음 시행되면서 종교인들이 내는 세금보다 정부에서 돌려받는 근로장려금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이다. 종교인이 소득신고를 하면 근로장려금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종교인은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하기 때문에 실제 과세대상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종교인 과세에 따른 추가 세수는 수백억원 안팎에 그치는 반면 근로장려금 등 정부가 지원하는 혜택은 두세 배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으로 미는 가계소득 증대정책은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안정기금, 근로장려금으로 구성된다. 두 가지는 브레이크가 걸렸고 남은 것은 근로장려금뿐이다. 근로장려금은 예산 편성이 아니라 세금 환급이라 정부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정부가 앞으로 근로장려금을 더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 부진으로 세입 예산이 크게 줄고 있다. 수혜대상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선심성 정책이자 밑 빠진 독에 세금 쏟아붓기다. 규모가 크게 늘어난 만큼 철저한 관리는 물론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높이는 근로장려금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길이다./mckids@sedaily.com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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