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9일 “(배터리 등) 일부 산업은 몇 개 기업이 함께 글로벌 리더십을 가져야 살 길이 열리고 국가적 응집력도 발휘할 수 있다”며 “아직 확고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한 배터리 업계의 다툼을 볼 때 안타깝다”고 쓴소리를 했다.
미국·일본 기업에 비해 후발주자로 반도체 업계에 뛰어든 삼성전자·현대전자·LG반도체 등의 경쟁적 협력 환경은 ‘메모리반도체 1위 국가’의 토양이 됐다. 이 관계자는 “1980~1990년대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공동개발 등을 통해 산업을 키우고자 협력했다”면서 “지금 배터리 업체들처럼 개별 기업의 이익만 생각하면 산업 전체 성장이 저해된다”고 꼬집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중국의 ‘배터리 굴기’ 외에도 후발주자 격인 유럽 기업의 추격이 거센 상황이다. 독일 경제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유럽 국가들이 두 번째 유럽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 조성을 논의하고 있다”며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3%에 불과한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세계 완성차 1위 업체 폭스바겐도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과거에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처음부터 경쟁 관계로 시작했다면 한국 반도체는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 배터리 산업을 글로벌 1위로 올려놓은 뒤 경쟁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가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배터리 업계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의 공통점 중 하나는 대·중소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소재·부품 등 제조업의 인프라에 신경 쓰지 않고 제조 자체에만 몰두하면 같은 문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배터리 소재는 일본에서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파우치 필름, 양극·음극 바인더, 전해액 첨가제 등은 일본에서 80% 이상을 공급한다”며 “국내 배터리 소재의 기반이 허약한 만큼 배터리 업체 간 공동으로 후방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효정·이재용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