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난 2·4분기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일본의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한일갈등 등 대외여건이 악화하고 있는데다 경기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기업 설비투자가 급감하고 다음달 소비세율 인상 이후 가계소비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대내여건도 암울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아 일각에서는 아베노믹스의 ‘10월 위기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9일 일본 내각부는 올해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 개정치를 속보치(0.4%)에 비해 0.1%포인트 낮은 0.3%로 하향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율 환산 성장률은 1.8%에서 1.3%로 0.5%포인트 낮아졌다.
일본 정부가 성장률을 하향한 것은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수출이 감소하면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자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한 것이다. 2·4분기 민간 설비투자는 전 분기에 비해 0.2% 증가하는 데 그쳐 속보치(1.5%)보다 대폭 낮아졌다.
문제는 일본 경제가 ‘수출 악화→기업 수익 악화→설비투자 감소’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의 2·4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4% 줄면서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상장기업 가운데 제조업체의 68%인 53곳의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했다. 순이익 감소 업체의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 2·4분기(73%)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고조로 엔화 강세 추이가 이어질 것을 감안하면 일본 기업의 수익성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추세 속에 엔화 가치가 올해 말 달러당 100엔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 및 한일갈등의 여파로 내수 중심의 비제조업 기업들의 실적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이날 일본 재무성은 7월 서비스 수지 적자가 전년 동기보다 733억엔 규모 확대된 2,299억엔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여행과 운수·통신 등 서비스 거래를 통한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를 나타내는 서비스 수지 적자폭이 확대된 것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한국 내 일본여행 불매운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국의 일본여행 자제 분위기로 일본 지방경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으며 지방은행들은 경기악화에 더해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으로 수익을 올리지 못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더 큰 불안요인은 일본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다. 오는 10월 소비세율이 8%에서 10%로 인상되면 그나마 일본 경제를 지탱하던 개인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는 상황에서 소비세율 인상에 부담을 느낀 일본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경우 일본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6일 발표된 일본의 7월 가계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0.8% 증가에 그쳐 시장 전망치(1.0%)를 밑돌며 불안감을 더했다. CNN은 “일본의 소비세율 인상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낮추면서 일본 경제를 침체에 더 가까이 끌어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침체 우려에 맞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일본은행(BOJ)은 7월 “물가안정 목표를 향한 모멘텀이 손상될 우려가 높아질 경우 주저 없이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과거와 같은 대규모 양적 완화나 공격적 금리 인하에 나설 여력은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2%) 물가안정 목표를 향한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면서도 “미중 무역마찰을 중심으로 경계를 요한다”며 대외여건 악화가 일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