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수요일] 숨바꼭질




- 정을순

오만데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ㄱ ㄱ ㄱ

부침개 접시에

ㅇ ㅇ ㅇ

달아 놓은 곶감엔

ㅎ ㅎ ㅎ

제 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경남 거창 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할머니의 작품이다. 오만 데 숨었던 술래를 팔십 년 만에 찾으니 얼마나 즐거울까. 부침개 접시 ㅇ까지는 그렇다 치고, 곶감 속에 숨어 있는 ㅎ까지 발견한 걸 보고 무릎을 쳤다. 한글 배운 지 수십 년 된 나는 왜 여태 못 찾았을까. 첫 마음을 낼 때가 바른 깨달음이라는 불가의 말씀이 떠오른다. 기성 시인들이 배워야 할 천진함이 그득하지 않은가. 숨은 글자 찾기 고수가 된 할머니 앞에 썰매 날에 숨은 ㄴ, 양장본 책에 숨은 ㄷ, 포크에 숨은 ㅌ, 벽돌담에 숨은 ㅍ은 요즘 얼마나 안절부절 못할까. 태풍 링링에 바람은 서늘해도 진땀나지 않겠는가. <시인 반칠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