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신남방서치] 韓-아세안 평화협력, 양자 넘어 지역으로 넓혀야

■신남방정책 2기 나아갈 방향은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아세안, 공통의 안보위협 크지 않아 정상간 교류에 머물러

미중 무역전쟁으로 아세안 등 중소국가 경제 불확실성 증폭

강대국 일방주의 속 이익 지키려면 다자 무역체제 강화 절실

민간 전문가 대화부터 시작...각정부간 전략대화로 발전 필요

지난달 2일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강경화(뒷줄 오른쪽 세번째)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각국 외무장관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일 태국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강경화(뒷줄 오른쪽 세번째)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각국 외무장관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1월25일부터 26일까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다. 한·아세안 관계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제3차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 열린다. 지난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순방 시 신남방정책을 발표한 지 2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인 신남방정책 추진이 두 돌을 맞는 시점이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다. 이달 이뤄진 태국·미얀마·라오스 순방으로 임기 내 아세안 10개국 순방을 모두 하겠다는 약속도 실현됐다. 이제 신남방정책 제2기 혹은 신남방정책 2.0을 논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신남방정책이 3P, 즉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그리고 평화(Peace)라는 세 가지 원칙하에 추진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각각 사회문화 및 인적 교류, 경제 협력, 그리고 정치안보 협력에 대응하는 협력의 원칙과 범주다. 사람 항목에서는 보다 많은 사회문화와 인적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려 했다. 번영 분야에서는 보다 깊은 경제 협력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간 상생 번영을 추구하는 협력을 해왔다. 이 두 개 분야는 양자 협력을 기본으로 한다. 한국과 아세안 사이 보다 많은 사회문화·인적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 그리고 보다 많은 경제 협력을 통한 이익의 공유와 상호 발전의 도모가 그 목적이다.

반면 평화 협력은 사람·번영에 관한 협력과는 다소 결을 달리해야 한다. 신남방정책하에서 평화 협력이 정상 간 교류를 제외하고는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한 이유도 방향 설정과 관련이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공통의 안보 위협이 크지 않다.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사이도 아니다. 양자 협력을 통해서 한·아세안 간 긴장을 낮출 일도 없다. 지역 평화 건설이라는 평화 협력의 큰 목표는 야심 차지만 멀어 보이고 안보 협력의 긴급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결과적으로 평화 협력 혹은 안보 협력의 구체적인 어젠다는 빈곤해진다.


한국과 아세안 사이 안보 문제를 포함한 평화 협력에서 양자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한국과 아세안은 지금 큰 전략적·경제적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아래 놓여 있다. 안보와 경제 문제에서 강대국이 앞장선 자국 중심주의가 지역 전체를 강타하고 있다. 자국의 경제·안보 이익 앞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게임의 규칙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 사이 무역갈등도 이런 큰 상황 변화의 한 장면일 수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사이의 경쟁, 미중 간 무역전쟁이 한국과 아세안 같은 지역 중소국가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이 이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던 지역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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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방정책의 평화 협력은 한·아세안 사이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양자 관계를 넘어 보다 큰 지역 전략 환경에 시선을 맞춰야 한다. 지역의 중소국가들로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전략적 불확실성 속에 한배를 타고 있다. 미중 경쟁과 무역전쟁 속에 한국과 아세안이 어떻게 협력해 우리의 이익을 지킬 것인가. 흔들리는 지역 질서, 특히 자유무역 질서를 바로잡고 강화하기 위한 한·아세안 공동의 노력은 어떠해야 하는가. 강대국 일방주의를 완화하고 중소국가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다자주의를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함께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서로 적대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깊은 전략적 신뢰 관계를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 간 보다 깊이 있는 전략대화를 하기 위한 걸음을 떼야 한다. 서로 자신이 보고 있는 지역 전략 상황에 대한 판단을 경청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정부 간 직접 대화가 조심스러우면 트랙 2, 즉 민간 전문가, 싱크탱크 간 대화로부터 차츰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트랙 2의 대화가 각 정부로 투영되고 정부 간 전략대화를 추동할 수도 있다.

신남방정책 2기의 평화 협력은 이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지금까지 평화 협력이 양자 관계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신남방정책 2기 한·아세안 간 평화 협력은 양자를 넘어 지역 전체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양자에 초점을 맞춘 결과 다소 궁색했던 신남방정책의 평화 협력 어젠다를 확장하고 의미 있는 협력을 만들어갈 수 있다. 한·아세안이 공동의 노력으로 강대국 경쟁에서 중소국가의 이익을 확보하고 지역 질서를 강화한다는 계획은 야심 차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쉬운 협력에 머무르지 않고 도전적 목표를 잡아야만 한·아세안 평화 협력이 보다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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