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의사들이 임상 경험을 활용해 제약업체와 의료기기사, 정보기술(IT)·바이오 기업, 투자업체와 함께 연구개발(R&D)과 기술 사업화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연구중심병원조차 직접 의료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를 설립하지 못하도록 돼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송해룡(63·사진) 고대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 겸 오스힐 대표는 최근 고대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가가 묶여 있어 고령화 시대 병원 경영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병원이 여러 사업모델을 만들려고 해도 제약이 많다”고 호소했다. 그는 정형외과에서 수준 높은 연구논문을 다수 썼고 왜소증 환자의 뼈를 늘려주는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오의료기기 회사인 ‘오스힐’을 창업했다. 오스힐은 얼굴과 관절에 약물이 잘 흡수되도록 하는 미용기기와 의료기기를 개발했고 뼈를 잘 생기게 하거나 관절염·근염을 치료하기 위한 주사제를 개발하며 제약사로의 기술이전도 추진할 방침이다. 송 교수는 지난 4월부터 고대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구축사업단장으로서 바이오헬스 스타트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그는 “정부가 2013년 ‘병원도 기술 사업화를 하라’며 고대구로병원 등 10개 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해 기술이전이나 창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규제와 창업 생태계 미비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6년간 연구중심병원 교수들이 63개사를 창업했으나 보건복지부와 병원의 지원 부족까지 겹쳐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보건산업진흥원과 함께 미국 보스턴 등 바이오 허브를 순회한 적이 있는데 미국은 세계 최고 클리닉센터인 메이요클리닉이나 유명 의대가 있는 존스홉킨스대처럼 병원이 기술이전이나 창업해 돈을 버는 게 활발하다”며 “메이요클리닉은 개발한 기술과 특허로 136개사나 창업했는데 삼성서울병원은 1~2개에 불과할 정도”라고 한국과 미국 현실을 비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과 환자·기업이 모두 윈윈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의사가 창업하면 당장 진료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만 제기할 뿐 큰 틀에서 국민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구중심병원의 창업과 기술이전을 가로막는 규제로는 대학 산학협력단을 통하지 않고는 의료기술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를 설립하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병원에서 기술이전이나 창업을 해도 지분을 병원이 갖지 못하고 대학 산학협력단이 갖게 된다”며 “이익이 병원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대학 산단으로 가는데 병원에서 번 것은 병원에서 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대학병원은 병원에 관해 잘 모르는 대학 산학협력단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해 병원에서 창업이나 기술이전을 해도 수익이 병원 연구에 재투자되기 힘든 실정이다. 고려대 의료기술지주회사도 11개의 자회사가 있으나 대학 산학협력단 산하에 있어 병원에 수익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등 재단·사회복지법인 소속 병원은 국내 타 법인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상속증여세법의 적용을 받아 창업이 더 힘들다.
그는 “산·병·연 협력이 이뤄지도록 의료기술협력단을 설립하고 그 밑에 의료기술지주회사를 두도록 해야 하는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의 문턱에서 표류하고 있다”며 “병원을 바이오헬스 생태계의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이 규제만 풀려도 고대구로병원의 경우 매년 100억원씩 재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다. 교수 등 교직원이 공동투자해 100억~200억원 가치의 회사를 키워 다국적 의료기기 업체나 제약사로부터 투자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규제완화의 반대 이유로 ‘영리병원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연구중심병원에서 창업이나 기술이전을 통해 얻는 이익을 재투자하는 것이 영리병원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과 달리 규제가 너무 많아 혁신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만약 올해 정기국회에서 이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내년 4·15총선을 앞두고 있어 규제완화가 상당기간 표류할 것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그는 “병원의 연구개발 성과가 자칫 논문이나 특허에 그치고 사업화가 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이오헬스 분야의 협력적인 창업 생태계 부족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병원 의사는 엔지니어나 투자전문가와 같이 의료지식을 잘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투자사는 전문가가 부족해 신약 쪽은 하긴 하는데 의료기기는 진단 쪽만 하려고 하지 치료 쪽은 못하고 있다”며 양측의 허들을 극복하려면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양쪽의 문화차이가 큰데다 임상 교수들은 창업연령이 평균 55세인데 투자심사역은 대개 30~40대이고 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투자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의사와 제약사 간 교류 확대의 필요성도 거론하며 임상 교수들이 안식년에 2년 정도 제약사에서 근무하며 창업하는 풍토가 있는 홍콩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에서 바이오를 연구하는 의사가 약 300명인데 이러한 의사가 투자사에도 1~2년 정도 근무하며 공부하면 병원·제약사·투자사 간 소통이 잘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바이오펀드 운용에 대한 전문가 참여 확대 방안과 연구중심병원의 투자펀드 신설 필요성도 제안했다.
송 교수는 “복지부가 300억원짜리 글로벌 바이오펀드를 만들었는데 이 운용위원회에 의사와 바이오 전문가가 같이 참여해 심의하며 키워나갔으면 한다”며 “앞으로 규모가 더 늘어날 텐데 아무래도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10개 연구중심병원이 100억원씩 총 1,000억원의 투자펀드를 만들면 병원 동문과 직원, 국내 의료기기 회사, 다국적 제약사 등에서 1조원 정도 투자금이 들어올 것”이라며 펀드를 만들어 국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는 존슨앤존슨의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바이오·의료 규제와 병원 창업 생태계 미비를 들며 답답한 표정이던 그는 개방형실험실로 기자를 안내하며 비로소 활짝 미소를 지었다. 개방형실험실은 임상 경험이 많은 병원과 기업이 함께 바이오헬스 사업화 모델을 만들도록 올해 시작했다. 7월 고대구로병원·아주대병원·전남대병원·동국대일산병원·인제대부산백병원 총 5곳이 지정돼 3년간 매년 8억원씩을 지원받고 병원은 매칭펀드 방식으로 매년 2억~3억원씩을 내게 된다. 이 중 고대구로병원은 고대의료원의 정밀의료 병원정보 시스템(P-HIS) 사업단과 함께 앞으로 80여개 대형 병원이 구축하게 될 빅데이터·인공지능(AI) 플랫폼에 바이오센서가 부착된 웨어러블 의료기기와 재활 의료기기를 공급해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 서비스에 기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5세대(5G) 통신, AI, 사물인터넷(IoT)용 핵심 주문형 반도체(ASIC)를 개발, 양산하는 ㈜세미솔루션 등과 스마트 헬스케어·의료기기 개발과 IT 플랫폼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고대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을 둘러보니 24개 바이오헬스 스타트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저마다 산·학·연·병 네트워크의 장점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중 민문호 오썸피아 대표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수술 시뮬레이션을 통한 교육과 수술 지원, 스마트 감성미러 기술 사업화에 나서고 있었다. 민 대표는 “재활의료·의료기기·융복합 등 분야별로 교수님들이 책임을 맡아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사업단에서 임상·기술사업화·투자 유치, 연구개발비 등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탁건 코어다 대표는 모션인식 라이다(LIDAR) 기술을 기반으로 인지 재활치료를 돕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신인선 엠디파크 대표는 환자의 편의성을 크게 높인 병원 전자처방전을 선보였고 신민선 쿡플레이 대표는 당뇨 등 환자용 레시피를 휴대폰에 연동해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조재형 아이쿱 대표는 의사가 상담내용을 디지털로 기록·저장해 환자가 휴대폰에서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놓았다. 레드서브마린·와이케이프로젝트·KB바이오 등도 임상 교수들과의 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송 교수는 “스타트업은 임상의로부터 경험을 듣고 병원 연구 인프라도 활용할 수 있고 의사는 현장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임상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며 바이오헬스 융합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He is…
고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인 그는 논문을 활발히 쓰며 5년 전 ‘오스힐’이라는 바이오 기업을 창업했다. 정형외과 재생치료·재생의학·근골격계에 관한 SCI급 논문을 188편 발표했고 특허도 약 30건에 달한다. 왜소증 환자의 사지기형을 치료하며 뼈를 늘려주는 수술을 많이 하고 왜소증 환우 모임(한국저신장연합회)도 만들어 KBS TV ‘인간극장’에 황정영씨 4형제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고대에서 창업 활성화를 위한 융합조직인 KU Magic(Korea university Medical applied global initiative center) 기술사업화본부장, 고대구로병원 창업보육센터장과 개방형실험실구축사업단장, 10개 연구중심병원 창업기업협의체 회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