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예멘 반군의 원유 생산 시설 공격으로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중동 지역의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사우디는 물론 미국까지 나서 이번 공격을 이란에 의한 ‘대리 공격’으로 정의하면서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중재로 고개를 들었던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 완화 기대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당분간 최고조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된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멘 반군의 사우디 원유 생산 시설 공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이란 강경론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마크 두보위츠 대표는 WSJ에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처럼 때로는 이란 정권과 그 측근들의 침략에 대한 군사적 대응만이 의미 있는 억지력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했다.
당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윗을 통해 이란을 사우디 석유 시설 공격의 배후가 아닌 ‘주체’로 직접 지목하며 “우리는 모든 국가에 공개적으로, 그리고 명백하게 이란의 공격에 대해 규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공화당 소속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미국은 이란 정유 시설에 대한 공격을 논의할 시간이 됐다”고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주문했다.
백악관은 사우디 피폭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전화통화를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위권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중대한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 대이란 강경책을 주도해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되고 백악관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정부가 더 이상 이란에 대한 유화 분위기를 이어가기가 어렵게 된 가운데 이미 경제적 제재 조치는 모두 동원하고 있는 백악관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강경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이란 석유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2차 제재 위협도 한 상태”라면서 “이제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자국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했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5일 성명에서 “그런 헛되고 맹목적인 비난과 발언은 이해할 수 없고 의미 없다”고 비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공격으로 미·이란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물론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예멘 내전도 급속히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경제 기반인 석유산업의 기간시설을 공격당한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테러분자(예멘 반군)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며 공격을 감행한 예멘 반군도 “적들이 더 뼈아픈 작전을 확대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내전이 장기화하는 예멘에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가 내전에 개입한 후 지속적으로 사우디를 공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