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견제로 주춤했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고립무원 상황이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 반도체 기업은 물론이고 미국의 입김이 강한 대만 업체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여기에 삼성전자(005930)도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중국 업체들과의 거래를 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는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반도체 굴기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16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은 최근 중추절 행사에서 향후 10년간 D램 양산 가속화를 위해 충칭산업기금과 협력해 8,000억 위안(약 16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초기 연구개발(R&D) 센터는 우한에 설립하고, 양산 공장은 충칭에 건설해 2021년부터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또한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수 인재 확충을 위해 지속적이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독자적인 경쟁력 확보를 언급한 부분이다. 이번 행사에서 칭화유니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의 현재 기술 라이선스를 불허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미국 기업 인수나 협력을 통한 기술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 최근 칭화유니와 관계가 돈독한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을 방문해 양사 간의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칭화유니 관계자는 미중 상황을 감안 할 때 마이크론과의 협력은 부정적이라고 언급했다. 칭화유니는 지난 2015년에도 D램 시장 3위인 마이크론 인수를 추진했으나 미국 정부의 불허로 중단한 바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칭화유니그룹과의 스마트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거래를 중단했다. 칭화유니 AP 제품의 경쟁력 약화가 주된 이유로 꼽히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에 이어 D램 생산을 추진 중인 칭화유니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중국 정부와 기업들도 독자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칭화유니 관계자는 “D램 분야에 우선 투자하고 낸드플래시의 독립적인 연구개발 프로세서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지금 당장 업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기술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 액정표시장치(LCD)와 마찬가지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정부 지원을 통해 산업을 육성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면서도 ”기술 진보가 거의 끝난 LCD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도 기술 진보가 계속되고 있어 중국의 전략이 통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도 “지금까지 중국 업체들의 계획이 제대로 지켜진 게 없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특히 낸드는 수요처가 많아 성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쓸 데가 많지만 D램은 낸드에 비해 수요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지면 시장 안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과 같은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 시기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4분기 D램 시장점유율은 46.6%로 전분기 대비 6.0%포인트 상승해 2위인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10.8%에서 20.0%로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