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北, 올 20발 퍼부으며 신무기 완성…"9·19 합의문 이미 휴지조각"

■9·19 이후 끊이지 않는 北도발

신형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韓방어력 압도하는 무기 개발

"고강도 경고 없으면 더 큰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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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4일. 북한은 지난해 9·19합의 이후 이어진 한반도 평화의 적막을 깼다. 지난 2017년 이후 1년5개월 만에 날아든 미사일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해 9월19일 평양에서 손을 맞잡고 군사적 위협을 자제하며 평화의 길을 걷자고 했지만, 올 5월 보란 듯이 원산에서 단거리미사일 2발을 쏘아 올렸다. 발사된 미사일의 사거리는 최대 240㎞.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로 내륙을 가로지르는 무기다. 서울과 평양 간 거리는 195㎞다. 단거리미사일은 한반도에 잠시 앉았던 평화의 비둘기를 쫓아냈다.

◇“文 정부 대북정책 덧없는 허상” 野 맹공


야권에서는 “북한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우리 대북정책이 얼마나 덧없는 허상인지를 보여줬다”며 중재자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을 향한 맹렬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북한이 적막을 깬 명분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4월22일에서 5월3일까지 진행한 연합편대군 종합훈련 등으로 북한을 향해 무력을 과시한 데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물론 1년5개월 만의 미사일 발사에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5월10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었다. 발사체 한 방으로 2018년 내내 이어진 평화 모드를 치적으로 올리지 못하게 했고,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미국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라는 의미도 갖췄다. 청와대와 여당도 감정싸움은 자제했다. 청와대·국가정보원 등은 발사체를 두고 “도발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현재의 대화 국면을 긴장 국면으로 전환할 만한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북한은 닷새 후인 5월9일 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방송 대담을 4시간 앞두고 사거리 420㎞의 탄도미사일을 평안북도 구성에서 발사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두고 “북한이 불만을 가졌다면 대화의 장에서 이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역으로 제4차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유화 제스처에 북한은 일시적이나마 추가 도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두 달 반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7월25일 북한은 5월 발사체와 같은 KN-23 탄도미사일 2발을 원산 호도반도에서 발사했다. 사거리는 600㎞로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거리다. 우리 정부는 달라진 분위기를 직감했다. 5월 발사 당시 ‘미사일’ 발언을 자제했던 청와대는 14시간 만에 “새로운 종류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인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혔다.


◇적대적 성격 뚜렷해진 北 미사일 도발



북한의 도발은 7월31일을 변곡점으로 확연히 적대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31일과 8월2일 북한이 KN-23이 아닌 신형 방사포로 쏜 발사체가 최대 사거리 250㎞를 날아간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KN-09 방사포보다 개선된 무기로 휴전선에서 쏜다면 충남 계룡대 등 중부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신무기를 잇따라 공개한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넘어 우리 군을 압도하는 새로운 무기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 선명해진 것이다.

이즈음 일본 외무성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대공 전력을 압도할 F-35A 스텔스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에 대응해 특별병기를 시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반도가 평화가 아니라 신무기를 선보이는 군사적 대척점이 돼가고 있다는 평가로, 추가 도발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8월10일과 16일 북한은 함경남도 함흥, 강원도 통천에서 최대 사거리 400㎞에 이르는 신형 전술지대지미사일(북한판 에이테큼스)을 각각 2발 발사했다. 그리고 8월24일과 9월10일 북한은 초대형 방사포를 각각 2발씩 쐈다. 결국 우리 군 내에서 “내륙을 관통하는 북한의 신무기가 전력화 막바지 단계에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가 한반도 유화 제스처에 집착하는 사이 북한은 3개월여 만에 내륙을 관통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대남 단거리 타격전력 4종’을 내놓았다. 다른 신형 무기의 존재 가능성도 열렸다. 분위기는 9·19합의 이행이 아니라 위반, 더 나아가 파기로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文 정부 조롱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명시적 경고나 수위 높은 무력대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북미와 동북아·한반도 정세를 손에 쥐고 주판알을 굴리며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비례적인 군사력 과시로 판 자체를 깨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이 같은 기조는 쉽게 읽힌다. 북한이 두 번째 전략 무기를 쏜 후인 8월5일에도 문 대통령은 “남북 간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 광복절에는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큰 성과”라며 협력을 강조했다. 반대로 북한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웃을)할 노릇’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라는 조롱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더 분명하고 수위 높은 경고 없이는 우리 정부가 평화국면이든 긴장국면이든 결국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5월부터 북한이 보여준 미사일 타격거리는 정확히 한반도 전역이다. 우리를 사정권에 둔 미사일을 넉 달 사이 10차례나 퍼부었는데도 정부가 입을 닫는다면 국가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마저 깨질 수 있다. 북미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면 북한은 한반도 주변 지역을 향해 더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와 군도 발언 수위를 더 높여 더 이상의 군사적 위협은 북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도발 때는 우리도 9·19합의를 붙잡고 있지 않겠다는 경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는 도발이 이어지던 지난달 14일에야 ‘2019~2024 국방 중기계획’을 내놓고 정찰위성과 중·고고도정찰무인항공기, 미사일 방어·요격 능력 확충 등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대비에만도 34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를 정밀 타격하는 사업 등 북측을 자극하는 사업은 빠졌고, 위성감시 체계를 제외한 무인정찰기(UAV) 등은 기존에 추진해온 내용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미대화에도 우리 국방력을 강화한 신종 무기체계는 강화되고 있어 9·19합의가 무력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명백하게 위협하는 신종 무기에 대해 수위 높은 경고를 하지 않으면 중간에 끼여 있는 우리가 북미대화의 카드로 쓰여 더 큰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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