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땅굴파기·통행세로 슬쩍…국세청 '지능적 탈세범' 잡는다

■미성년 부자·고액자산가 등 219명 세무조사

30세 이하 부자 1인당 평균 44억

자녀에 편법 증여 등 송곳 검증

이준오 국세청 조사국장이 19일 세종에서 고액자산가 219명 동시 세무조사 실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세청이준오 국세청 조사국장이 19일 세종에서 고액자산가 219명 동시 세무조사 실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세청



국세청이 부모로부터 고가의 부동산 등을 편법으로 물려받은 미성년·연소자 부자 147명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일례로 제조업을 하는 A씨는 ‘꼬마빌딩’ 등 상가건물 여러 채를 뚜렷한 자금원이 없는 20대 초반 자녀와 공동명의로 취득하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편법 증여한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소득 및 자금 원천이 불분명한데도 1인당 평균 44억원을 보유하고 있고 가장 어린 조사대상자는 5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19일 기업 사주일가를 포함한 고액 자산가 중 악의적이고 지능적인 탈세 혐의가 있는 219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보유 재산 대비 수익원이 확실하지 않은 30세 이하 부자 147명과 고액 자산가, 부동산 재벌 72명 등이 대상이다. 미성년·연소자 중에는 무직이 16명, 학생은 12명, 미취학자도 1명 포함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세법망을 피한 ‘땅굴파기(Tunneling)’ 등을 통해 기업의 자금과 사업 기회를 빼돌린 의혹이 포착됐다. 땅굴파기는 땅굴을 파는 것처럼 회사의 이익을 지배주주가 은밀하게 빼돌린다는 경제 용어다. 예를 들어 해외현지법인 투자, 차명회사 거래 등을 이용하거나 묘역·미술품·골드바 등 다양한 자산을 활용해 기업자금을 유출시킨 의혹이 있다. 또 사주일가 지배법인에 부를 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당 내부거래나 끼워 넣기 거래를 해 이른바 ‘통행세’를 걷었다. 이같이 유출한 자금은 미성년·연소자 자녀의 금융자산 및 부동산 취득에 쓰여 편법적으로 부의 대물림이 이뤄졌다. 72명의 고액 자산가, 부동산 재벌 가운데 기업자금 유출 혐의자는 32명이며 부당 내부거래와 변칙 상속증여 혐의가 적발된 경우는 각각 14명, 26명이다.

탈세의심 대상 219명 재산 현황탈세의심 대상 219명 재산 현황


특히 고액 부동산·예금 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소득세·증여세 신고 내역 등 정당한 자금 출처가 없는 고액 자산가의 미성년·연소자 자녀 중에서는 자동차 부품 도매업을 영위하는 부모가 현금 매출의 신고를 누락하고 탈세한 자금을 수십 차례에 걸쳐 자녀 명의 계좌에 입금하는 방법으로 증여한 사례가 적발됐다. 또 한 성형외과 의사는 비보험 수입금액을 탈루해 조성한 자금을 ‘미취학 자녀’ 명의의 고금리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증여했다. 이들 147명 중 부동산 관련 혐의자가 80명으로 가장 많았고 예금과 주식 관련 혐의자가 각각 50명, 17명으로 조사됐다.


전체 219명의 보유 재산은 총 9조2,000억원, 1인당 평균 419억원이며 1,000억원 이상 보유자도 32명에 이른다. 이 중 미성년자를 포함한 30세 이하 부자는 가족 기준으로 평균 111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30세 이하 부자 당사자의 재산만 보면 평균 44억원이다.

관련기사



국세청은 이번 조사로 탈세 사실이 확인될 경우 추적·과세하고 세법 질서에 반하는 고의적·악의적 탈루행위에 대해서는 검찰에 고발하는 등 엄중 처리할 계획이다. 또 세무대리인 등 세무조력자가 조세포탈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면 함께 고발할 방침이다. 이준오 국세청 조사국장은 “미성년·연소자가 보유한 고액 주식·부동산·예금의 자금출처 및 흐름을 끝까지 추적해 원천자금의 증여세 탈루를 검증하고 필요할 경우 부모 등 친·인척의 증여자금 조성 경위 및 사업소득에 대한 소득세 탈루 여부 등도 면밀히 추적·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세청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저인망식 조사가 아닌 고액 자산가의 탈루 혐의에 대한 정밀검증 위주로 초점을 맞춰 세심하게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